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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없는 開花, 봄꽃의 경고… 국립수목원의 수상한 봄
    생활 속 이야기(일반) 2012. 5. 8. 21:30

    올해 서울 여의도공원의 매화는 예년보다 약 10일 늦은 3월 29일∼4월 1일에야 꽃망울을 터뜨렸다. 반면 북한산 중턱 가장 높은 곳의 산벚꽃은 지난해보다 3∼4일 이른 4월 29일 만개했다. 겨울의 끝자락이 춥고 길어졌는데도 4월 중순에 갑자기 고온현상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산림청 산하 국립수목원(옛 광릉수목원) 안에서도 늦게 오는 봄과 빨리 오는 여름은 3년째 감지되고 있다. 봄꽃나무들이 수상한 봄을 먼저 알고 반응하는 것일까. 지난해 5월 5일 찾았던 경기도 포천시 국립수목원을 지난 2일 다시 방문했다.

    길어지는 겨울, 일찍 시작되는 여름을 식물이 먼저 알고 경고음을 울린다. 국립수목원이 수목원내 식물을 대상으로 올해까지 4년간 조사한 결과 3월과 4월 초순의 저온현상으로 이른 봄 피는 꽃의 개화시기가 늦춰진 반면 4월 중순의 고온현상으로 이때 피는 꽃의 개화 시기는 빨라졌다. 봄꽃들이 동시에 피어버린 것이다.

    국립수목원의 수상한 봄=지난해 어린이날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광릉수목원을 찾았을 때는 앵초, 피나물, 만병초 등이 피어있었다. 그러나 올해에는 지난 2일 피나물 꽃이 거의 다 졌고, 앵초는 일부만 피어 있다. 산벚꽃도 지난해는 끝물인 꽃잎들을 흩뿌렸지만, 올해에는 벌써 다 졌다. 육림호 부근의 자목련도 화려했던 지난해와는 달리 보라색 큰 꽃잎들을 거의 다 떨군 채 후줄근한 모습이었다. 귀룽나무가 가장 극적이었다. 지난해 어린이날 봉지 속 팝콘처럼 만개한 흰 꽃을 보여줬지만, 올해는 벌써 지기 시작했다. 수목원측은 귀룽나무 꽃이 4일 이미 다 졌다고 전했다.

    국립수목원 전시원 안에서는 진달래가 드문드문 끝물인 꽃잎을 달고 있었다. 제철인 산철쭉과 막 피기 시작한 철쭉이 진달래꽃과 공존하고 있었다. 동행한 오승환 임업연구사는 "원래 진달래, 산철쭉, 철쭉, 연산홍 등의 순서로 꽃을 피우는 게 정상인데 올해 진달래는 개화가 4월 16일로 한참 늦었고 산철쭉은 일찍 피다 보니 이런 현상이 빚어졌다"고 말했다. 장미과 벚나무속 나무들도 매실나무(매화), 살구나무, 벚나무, 복사나무(복숭아꽃), 산벚나무, 귀룽나무 순서지만 올해 매화와 살구꽃 이외에는 거의 동시에 피고 있다.

    이처럼 국립수목원에서는 식물들이 일제히 개화하는 현상을 2년째 보이고 있다. 오 박사는 "봄의 수상한 변화를 식물들이 먼저 알아차리는 것 같다"며 "다만 최근 3년간 지속된 춥고 긴 겨울이 일반적 추세인지, 기후변화의 한 극값에 그칠지는 장기적 관찰을 거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동시다발적 개화=국립수목원이 2009년부터 4년간 수목원내 8개 수종을 조사한 결과 4월 초순에 개화하는 히어리, 산수유, 미선나무, 개나리 등은 올해 지난해보다 3∼5일 늦게 꽃망울을 터뜨렸다. 반면 4월 중순에 개화하는 진달래, 앵초, 백목련, 벚나무 등은 2일 정도 일찍 꽃을 피웠다. 국립수목원에 따르면 서울이나 다른 경기북부지방보다 기온이 낮은 편인 수목원내 히어리, 산수유, 미선나무, 개나리 등은 2009년 모두 4월 1일에 개화했지만, 올해에는 각각 2일, 9일, 16일, 16일에 꽃이 폈다. 산수유와 미선나무는 지난해(4월4일과 11일)에 비해서는 5일, 개나리는 지난해(13일)에 비해 3일 늦어졌다.

    진달래, 앵초, 백목련, 벚나무는 2009년 각각 4월 7일, 14일, 10일, 14일에 개화했지만 올해는 각각 16일, 23일, 23일, 23일로 개화시기가 모두 1주일 이상 늦춰졌다. 그러나 올해 이들 4개 수종의 개화 시기는 지난해에 비해서는 모두 이틀씩 빨라진 것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서울에서 개나리는 4월 4일, 진달래는 4월 8일, 벚꽃은 4월 15일에 개화한 것으로 공식 집계됐다. 예년에 비해 2∼5일 늦었다. 3월 꽃샘추위가 길고 매서웠던 탓이다. 3월 중순기온은 평년대비 1.7도 낮았고, 3월 하순 기온도 0.3도 낮았다.

    벚꽃 개화시기의 남북간 집중화=전국 17곳에 대한 국립수목원의 봄철 개화시기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쪽과 북쪽의 위도차이에 따른 봄꽃 개화시기 간격도 좁혀지고 있다. 벚나무가 가장 빨리 개화하는 제주도와 가장 늦게 꽃이 피는 경기도 연천지역의 개화일 간격이 2010년 42일, 2011년 29일, 2012년 21일로 줄어든 것이다.

    2009∼2012년 4년간 벚꽃이 피는 시기는 해마다 일정하지 않았다. 전국 평균 개화일자가 2010년엔 2009년보다 10일, 2011년엔 전년보다 3일 늦었다. 다만 올해는 지난해보다 2일 빨라진 것으로 조사됐다.

    흔들리는 생태계, 적응을 위한 노력=문제는 꽃만이 아니다. 곤충도 개화시기 변화를 우화(羽化)시기가 쫓아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국립수목원 김일권 박사는 "매개곤충도 꽃이 빨리 피면 어느 정도 빨리 우화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그래도 시차가 커 수분활동 시간이 줄어들면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국립수목원 신준환 원장은 "서로 연결된 생태계 안에서 홀로 안전할 수는 없다"면서 "사람은 동시에 여러 꽃을 보니까 당장은 좋을지 모르지만 과일 수확이 줄어드는 등 결국 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변화, 서식지 훼손, 외래종 침입 등으로 멸종위기에 몰린 식물종을 서식지 바깥에서 보존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산림청은 2009년부터 '기후변화 취약 산림식물종 보전·적응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립수목원, 강원도립화목원, 대구수목원, 전남 완도수목원 등 9개 국공립수목원은 전국적 모니터링을 거쳐 고산지대 수종 등 180여종을 수집 및 보존하고 있다.

    서식지외 보전사례로서 국립수목원의 상징 종이자 이곳에서 처음 명명된 광릉요강꽃을 빼놓을 수 없다. 멸종위기종 Ⅰ급인 광릉요강꽃(난초과 다년생식물)은 광릉 국립수목원에서도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 국립수목원은 전국에 몇 곳 안 되는 자생지로부터 광릉요강꽃 27개체를 2009년 국립수목원 소리봉으로 옮겨 심어 증식에 성공했다. 수목원측은 8일 보도자료를 통해 "2010년 24개체로 줄었던 소리봉 광릉요강꽃이 2011년 31개체, 올해에는 36개체로 늘어나 소리봉 지역에 완전히 적응했다"고 밝혔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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