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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춘화2
    생활 속 이야기(일반) 2008. 4. 27. 16:30

    김홍도-운우도첩(雲雨圖帖)


    김홍도-운우도첩(雲雨圖帖)06
     -18세기 말 사대부들의 호사 취미가 엿보이는 김홍도의 그림. 확실히 신윤복보다는 격조가 있으나, 공갈은 신윤복이 더 좋다는.



     

    김홍도-운우도첩(雲雨圖帖)01
    -애로 비디오에 과부들이 단골 등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춘화에는 파계승들이 자주 등장한다. 엿보는 이는 동자승으로, 신윤복의 엿보는 그림보다 공간 처리가 한수 위임을 알 수 있다.



    김홍도-운우도첩(雲雨圖帖)05
    -김홍도의 해학적인 기질이 드러나 있다. 달려드는 저 남자, 이대근이 아닌가.




    김홍도-운우도첩(雲雨圖帖)09
     

    "버드나무 가지 사이로 달빛이 비치고 있는 밤풍경속에서 두 남녀가 방사(房事)를 행하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이 그림은 춘화라기보다는 한 폭의 운치있는 산수화 같다. 이처럼 조선시대 춘화는 인간의 성을 자연과 결함시킴으로써 외설스러운 주제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인체의 묘사는 비록 정확한 데생을 바탕으로 하진 않았지만, 행위에 대한 사실감을 잘 살렸다. 배경의 정물들은 이 그림의 주제인 남녀에게로 시선이 집중될 수 있도록 배려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담채와 수목이 어우러져 담담한 느낌을 준다. 한 편의 시상(詩想)이 떠오를 듯한 서정적인 자연 경관을 성희 장면과 결합시킨 이 그림은 조선시대 춘화의 백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춘화 中 발췌>

    과연 김홍도,

     


    김홍도-운우도첩(雲雨圖帖)04
    -
    야외에서의 장면은 주로 경승처를 배경으로 묘사되었다. 야외의 경승처를 춘화의 배경으로 묘사한 것은 중국이나 일본 춘화에서 나타나지 않는 조선 후기 춘화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그리고 배경의 숲 속이나 계곡 등은 단순히 무대 장치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음양 결합을 상징적, 암시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엇다고 한다.
    서울의 경승지는 장안의 화류 풍류처였으며, 자연경을 배경으로 하는 춘화들은 조선 후기의 춘화가 중국과 일본보다 좀더 서정적 양상을 띄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된다.
      그런데 저 노란 요강 같은것은 도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김홍도-운우도첩(雲雨圖帖)07
    -한폭의 산수화, 또는 산수와 자연을 즐기는 사람들의 풍류를 묘사한 풍속도와 같은 춘화 (역시 김홍도!)  배경의 바위는 둔부의 모양을 암시하고 있다.



    김홍도-운우도첩 (雲雨圖帖) 10
    -김홍도는 쓰리썸까지 섭렵하셨다.(물론 중국 춘화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현재 발견된 한국 춘화중 질적으로 가장 우수한 것은  단원 김홍도의 <운우도첩(雲雨圖帖)>이다. 단원의 도인이 찍혀있는 운우도첩은 완전한 상태가 아니고 분첩되어 일부가 따로 존재하고 있다. 아직 반수 이상 발견되지 않고 있어 작품에 대한 완전한 이해에는 한계가 있으나 현재 알려진 열세폭의 그림들로써도 충분히 단원시대의 조선춘화 양식을 고찰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단원의 작품으로 간주되고 있으나 일부 학자들은 단원의 후배세대 화가의 작품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이 단원의 진품이든 후배의 모작이든지 간에, 그 도상과 양식에 있어 이미 조선 춘화로서의 독자적 양식이 성립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양식은 당시 풍속화 양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 자연 경물을 함께 묘사함으로써 소경산수 인물의 전통을 가미하고 있다. 그리고 자연물에 성적인 성격을 부여하여 인간과 자연의 생성원리가 하나라는 동양적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등장인물의 성격이 분명하다는 점은 당시의 성풍속을 토대로 제작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며, 당시 성풍속과 성의식에 녹아있는 해학성과 낭만성을 보여주는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신윤복-건곤 일회도


    신윤복-건곤 일회도 01  (乾坤一會圖)
    - 우리나라 춘화는 체위가 평범한 반면 소품과 배경이 은유적이다 라는게 보통의 해석이다.




     

     신윤복-건곤 일회도 03  (乾坤一會圖) 
    -춘화의 단골 주인공은 이대근이 아니라 스님이시다. 단촐한 배경으로 보아 기방이나 사대부방이 아닌 객실(요새로 말하자면 모텔)쯤 되보인다. 남녀의 자세로 보아 기도하러 온 여인이나 주인을 따라온 여시종이 스님에게 깔짝대는 중이 아닌가 싶다.




    신윤복-건곤 일회도 10  (乾坤一會圖) 
    -럭셔리한 기방에서의 소프트한 한 장면이다. 성기가 드러나지 않으면서 분위기만 잡다 끝나는 식의 한국 애로물의 원조급 이라고 볼수 있지 않나 추정됨




    신윤복-건곤 일회도 06  (乾坤一會圖)
     
    -젊은 여성과 섹스시 회춘할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한 원조교제는 이당시에도 물론 있었다.배경의 소품들로 보아 남자는 학식과 덕망을 겸비한 선비로 추정된다. 

     




     

     신윤복-건곤 일회도 05  (乾坤一會圖) 
    -이 남녀의 자세는 신윤복의 그림 외에 다른 춘화들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데, 이는 춘화를 위한 밑그림 교본이 있었음을 증명한다. 그림을 보는 이가 정사 장면을 훔쳐보는 듯한 효과를 주기 위한 커튼 표현을 주목. 공갈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림.




     신윤복-건곤 일회도 07  (乾坤一會圖)
     
    -꽤 흥분된 상태인 남녀. 한국 춘화의 경우 나체의 묘사보다는 부분적으로 은밀하게 드러난 몸을 표현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을 띤다. 이또한 공갈이 좋아하는 그림.





     신윤복-건곤 일회도 08  (乾坤一會圖)
     
    -정사장면을 엿보는 도상은 동아시아 세나랑의 춘화에 자주 등장하는 방식으로, 보통 소년이나 동자승. 하녀들이 엿보er로 등장한다.  감상하는 사람이 그 광경에 ‘참여’함으로서 이야기가 성립된다고 보았다. 




     신윤복-건곤 일회도 06  (乾坤一會圖)
     
    -조선 후기로 갈수록 배경은 단순해지고 인물의 행위 자체에 집중하는 경향을 띄게 된다. 아마도 중인 계층이 소비층으로 합류되고 청나라 춘화가 수입되면서 좀더 향락적이고 직접적인 이미지를 원하게 된것이 아닌가 한다.
     

    기술직 중인이나 서리배들은 부의 축적과 함께 한문학적 지식 등을 기반으로 詩,書,畵,樂을 겸비했거나 높은 감식안을 지니고 향수하던 여항문인(閭巷文人)으로서 당시 문화활동에 있어 사대부 문인들에 버금가는 중추적 세력으로도 활약했다. 종래의 실용적이고 비속적으로 인식되던 춘화를 좀더 풍류적인 완상물로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구실을 했던 도 그들이었다.

     

    춘정류 풍속도 수준에서 상황을 보다 농염하게 진전시킨 듯한 춘화 도상은 새로운 문화 담당층으로 성장하면서 당시 도시 유흥을 주도했던 이러한 중서층 세력가들의 취향이 크게 작용된 것이라 추측된다. 정상적인 부부관계 보다는 기녀를 상대로 성애를 즐기거나  주인이 여종과 관계하거나 승려의 파계광경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배우의 건장한 체격과 콧수염으로 보아 무사계급에 해당되는 것으로 추정.

    지금까지 본, 혜원 신윤복의 낙관이 찍혀있는 건곤일회도첩(乾坤一會圖帖) 은 단원 김홍도의 화첩에 비해 회화적 밀도가 부족하고 도상도 성행위 위주로 묘사되고 있다.<운우도첩>과 마찬가지로 성격묘사나 주변 경물 묘사가 풍속화적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운우도첩이 띠고 있는 자연관이나 음양사상은 현저히 삭감되어 있다. 그리하여 혜원의 낙관은 찍혀있으나 혜원 신윤복의 작품으로 100%확신할 수는 없는데,  알려진 신윤복의 풍속화첩인 <전신첩>그림과 비교해 볼 때  전체적으로 섬약하며 인물묘사도 갸름하고 옷주름도 더 번잡하고 짙어 유연한 맛이 부족하고, 신윤복 특유의 맑고 산뜻한 색채감도 떨어져 전반적으로 신윤복의 풍속화첩에 비해 소탈한 느낌을 준다.

     

    따라서 이 화첩의 그림들은 신윤복의 양식을 강하게 반영하면서 부분적으로 김홍도의 소박한 화풍을 가미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며, 형식화의 진행 정도로 보아 19세기 전반경에 제작된 카피작이 아닌가 추정된다. 그러나 혜원도 많은 춘화첩을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며, 혜원이 화원(畵園)에서 쫓겨났던 사실 또한 그와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정재 최우



    조선 말기 청나라 춘화의 소개로 색다른 구도와 체위의 춘화가 그려졌다. 뎃생력과 품격에 있어서는 김홍도와 신윤복을 따를수 없으나 애정은 더 간다는.

      
     파계승 정재 버젼. 두분다 매우 급해보인다.



     김홍도와 신윤복에서는 볼수 없던 구도.  아마도 중국 춘화의 영향을 받은 조선 말기의 춘화를 모본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남자 배우의 능숙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정재의 그룹 버젼. 조선 말기에 나타나는 이러한 그룹 도상은 조선 말기의 성적 문란을 시사하고 있다. 앞의 한쌍은 다른 그림에서도 많이 보여지던 자세로, 기존에 사용하던 밑그림 본에서 따서 그린것으로 추정됨.




    한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 춘화의 한 장면.  절구공이와 절구, 닭들이 각각 의미를 가지는 풍속화적 성격이 강하다. 주인이 없는 틈을 타 잽싸게 하는 장면.



    정재의 훔쳐보기 버젼. 청나라의 영향으로 추정되는 집기들을 볼 수 있다. 

    가슴을 드러내고 엿보는 엿보er 여인의 모습 은 감상자로 하여금 동일한 욕구를 느끼게 하기 위한 장치로 삽입된 도상일 것이다.

     


    드디어 의자까지 등장하였다. 의자나 침상은 중국 춘화에서 많이 보이는 세트들이다. 중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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