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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Re: 개미
    기타 2011. 6. 3. 08:51
    • 개미
    • 이름 : 베르나르 베르베르 평가 : 문학과 과학의 일치를 추구하는 작가 약력 : 1961년 프랑스 뚤르즈 출생1978년 고교생 신문 「유포리Euphorie」창간. 1979년 뚤루즈 대학에서 법학 전공.1988년 ‘뉴스 기금’의 신인 기자상 수상.1990년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 의 과학부 기자 당시 라는 기사로 Mumm의 에 노미네이트.1991년 소설「개미」출간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름. 작품 : 뇌, 나무, 개미, 타나토노트 개미 1부 A ▶ 제 1 부 ▶ 개 미 나의 부모님께, 그리고 이책을 짓는 데 도움을 준 모든 이들, 벗들, 연구자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 차 례 제1장 일깨우는자 제2장 아래로 아래로 제3장 세 편의 오디세이아 제4장 미로의 끝 당신이 다음 네 줄의 글을 읽은 몇 초 동안. 40명의 사람과 7억 마리의 개미가 지구 위에 태어나고 있다. 30명의 사람과 5억 마리의 개미가 지구 위에서 죽어가고 있다. 사람: 포유 동물로서 크기는 1미터에서 2미터 사이로 다양함. 몸 무게는 30킬로그램에서 100킬로그램 사이. 암컷의 임신 기간은 9개 월. 식성은 잡식성. 개체의 수는 50억 이상으로 추산됨. 개미: 곤충으로서 크기는 0.01센티미터에서 3센티미터로 다양함. 몸무게는 1밀리그램에서 150밀리그램 사이. 산란은 정자의 저장량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 식성은 잡식성. 개체의 수는 수십억의 십억 배 이상으로 추산됨. ‡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 작가의 말 인간이 별들을 정복하러 나서는 이 시대는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 인 지구를 더욱 잘 알아야 하는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구에는 우 리가 밝혀내야 할 신비가 아직도 무척이나 많기 때문입니다. 지구 밖의 생명을 찾아서 수백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나아가 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간편한 여행을 해봅시다. 무릎을 구부리고 30 센티미터 정도의 높이로 몸을 숙인 다음 땅바닥을 들여다봅시다. 그 러면 우리는 공상 과학 소설에 나오는 어떤 장면에도 손색이 없는 광경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흙먼지, 풀, 자그마한 동물들, 이끼, 꽃들이 보일 것입니다. 그것은 색다른 세계의 정취를 자아내는 장식 들로 가득찬 하나의 모형 정글과도 같습니다. 로케트는 외계인을 찾 으러 가지만, 우리는 몸을 숙이는 것만으로도 지중 동물과 만나게 됩니다. 그 지중 동물 중에서 가장 수가 많고 가장 강력한 것은 틀림없이 개미입니다. 아마존 강 유역의 삼림에서는 개미가 생물 총량의 10% 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거기에 있는 식물들과 동물들을 하나의 남비 속에 넣고 뒤섞는다면 그 남비 에 담긴 내용물의 10%를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개미는 가장 널리 퍼져 있는 동물입니다. 어디를 가든, 어디를 살 펴보든 우리는 개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수많은 개미들이 지구의 표 면을 온통 뒤덮고 있습니다. 개미들은 적도 사막의 열기에도 북 유 럽 스텝 지역의 혹독한 추위에도 적응할 줄 알았습니다. 개미는 어디에서나 수가 많고 강력합니다. 개미는 자기들을 잡아 먹는 어떤 동물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어떤 살충제에도 적응합니다. 개미는 모든 생태 구역에 쳐들어가서 그 곳을 정비하고 그곳을 지배 합니다. 인간이 지구에 살게 된 지는 3백만 년에 불과하지만, 개미가 지구 에 살 게 된 지는 1억 년이 넘습니다. 인류가 나타나기 전 9천 7백 만 년 동안 이 곤충은 명실상부한 하나의 문명, 즉 9천 7백만 년의 경험을 축적한 문명을 건설할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니 개미에 비하면 우리는 경험이 없는 아기에 불과합니다. 아 기들처럼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장난감들을 깨뜨립니다. 하 지만 1억 년 후에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어쩌면 우리는 개미들이 한 것과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개미의 문명이 끊임없이 진보해 왔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개미 문명의 초기, 그러니까 1억 년 전에는 개미들에게 경쟁자가 있었습 니다. 흰개미가 그들입니다. 그러나 그 경쟁자는 개미를 돋보이게 하는 구실을 했을 뿐입니다. 흰개미들과 싸우면서 개미들은 전쟁과 기술을 배웠습니다. 흰개미들을 앞지르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개미들 은 무기와 도구들을 발명해 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우리가 최근 들어서야 사용하게 된 첨단 기술을 개미들은 그때부 터 향유하게 된 것입니다. 개미는 자기들의 애벌레를 활용해서 얇은 천을 만들 줄 알고, 일개미들을 활용해서 먹이를 공급할 줄 알며, 일개미들을 살아 있는 냉장고로 변형시킬 줄도 압니다. 또한 진딧물 을 사육하여 분비꿀을 짜 낼 줄 알고, 술과 곡물 가루와 버섯을 만 들어낼 줄도 압니다. 개미의 힘은 그들의 다양성에서 나옵니다. 다양성이란, 형태의 다 양성, 기술의 다양성, 지적인 능력의 다양성을 말합니다. 현미경으 로 보아야 보일 만큼 아주 작은 개미가 있는가 하면 사람들이 겁을 먹을 만큼 커다란 것도 있습니다. 전쟁만을 하는 개미가 있는가 하 면 채식 활동만을 하는 것도 있습니다 몇 개의 마을, 심지어 몇 개 의 도시가 연합하여 몇 헥타르에 걸친 연방을 이루어 사는 개미들이 있는가 하면, 여덟에서 열 마리가 작은 씨족을 이루어 사는 개미들 도 있습니다. 옛날부터 인간은 개미를 관찰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3천여 년 전에 솔로몬 왕은 고 말했습니다. 동부 아프리카에 사는 도공 사람들은 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친숙한 라퐁텐 은 개미에게 쩨쩨하고 인색한 동물이라는 인상을 부여함으로써 지울 수 없는 낙인을 찍었습니다. 라퐁텐은 매미와 개미의 우화에서 이 렇게 썼습니다. 하지만 그 곤충을 알기 위해서 그런 신랄한 말들을 들먹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릴 적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개미들을 관 찰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작은 나뭇가지를 가지고 장난을 쳐 서 개미 마을의 구멍을 넓혀본 적이 있고 그들의 도시를 갈라서 그 들의 군대를 짓밟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는 그들의 병정개미들 중의 한 마리가 우리에게 기어 올라와서 마치 가지 얹는 마무로 가득찬 행성에라도 온 것처럼, 우리의 손이 팔의 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관찰을 하기는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대개 개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몇 시간 동안 정원에 머물며 개미를 바라보던 아이는 마 침내 낙담을 하고 언제나 그렇듯이 개미들을 학살하기에 이릅니다. 고드디오스의 매듭을 알렉산더 대왕이 칼로 잘라버렸듯이 사람들 은 매듭을 도통 이해하지 못할 때는 그것을 잘라보리고 맙니다. 그러나 그것은 편법입니다. 개미를 죽이는 것은 사람들이 개미들과 다른 형태의 관계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개미 를 죽이는 것이 아이에게는 소인국 난쟁이들에 대한 자신의 전능함 을 처음으로 입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나 역시 개미들을 죽였고, 개미들을 밟았으며, 개미들의 통로에 레몬 시럽을 탄 물을 부었습니다. 그러나 개미집을 유린하는 것으로 는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라는 개미를 연구하기 위하여 아프리카로 떠났습니 다. 거기에서는 마냥 개미가 사람을 죽이기도 했기 때문에 인간과 개미와의 관계가 역전되어 있었습니다 육식성 개미들의 행렬 앞에서 인간들이 도망을 치는 것입니다. 1억 마리에 가까운 성난 병정개미들이 면도말처럼 날이 선 턱으로 무장하고 검은 띠를 이루며 몰려옵니다. 아무것도 그 개미들에게 대 항하지 못합니다. 개미떼는 흡사 분출하는 용암처럼 시커먼 물줄기 가 됩니다. 그 물줄기 앞에서 울부짖거나 도망치려고 바둥거리는 온 갖 작은 동물들이 내지르는 소리가 멀리서도 분명하게 들립니다. 사람 들이 도망을 치고 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의 집을 포기합니다. 마냥 개미떼의 모습은 >의 광경을 방불케 합니다. 그것은 개미 들의 힘이 가장 사납게 표현된 모습입니다. 나는 여왕 개미의 사진 을 찍으려고 했다가 하마터면 그 곤충들에게 산 채로 먹힐 뻔 했습 니다. 다행히도 그 녀석들에게 나를 알고 싶다는 욕구가 일었던 모 양입니다. 그 일을 겪고 나서 나는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아주 작은 형제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 을 한 편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런 책이나 쓰겠다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쓰기로 했습니다. 숲속의 불개미, 즉 가장 영리하고 가장 잘 조직된 유럽 종의 개미들이 주인공이 되는 서스펜스가 있는 소설을 말입니다. 내가 생각한 책은 하나의 모험소설이기도 하고'반지의 주인'처럼 신비스런 지식을 가르치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는 숲속의 요정이 실제로 존재하며, 여러분이'개미'의 주인공들을 만나시려면 여러분의 찬장을 열어보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개미와 사람들에 관한 이 이야기를 하기까지 나에게 12년이나 걸 렸습니다. 하지만 나는 되도록이면 배경과 줄거리와 괴물과 전사들 을 정확하게 그리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이 400여 페이지를 읽는 동안에 여러분 자신이 개미라는 인 상을 갖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러분은 생식 능력이 있는 젊은 병정개미 327호와 사귀어야 합니 다. 그는 자기 나라 안에 모종의 음모가 진행되고 있음을 깨닫고 난 쟁이개미들에게 매수된 용병들이 잠입했을 거라는 의심을 갖게 됩니 다. 병정개미 103683호가 그를 도와 벨로캉의 캄캄한 통로로 탐색을 하러 갑니다. 그러나 어머니인 여왕개미 벨로키우키우니는 자신의 더듬이로 밝혀주는 정보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책 '개미'에 있는 모든 것은 실제와 비슷하게 구상 된 것입니 다. 어떤 것도 과장해서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자연은 아 주 환상적이어서 있는 그대로를 제대로 이야기하기만 하면 됩니다. 실제로 개미들은 대규모의 전쟁을 수행합니다. 개미들의 세계에는 정말로 전차, 일광욕실, 노예, 나라들의 연방, 수문장, 온도가 조절 되는 영아실, 마약 공급자, 진딧물 사육실, 알콜 주조실 등이 있습 니다. 소설 '개미'는 여러분이 잠시 인간 관점을 떠나서 소설을 읽는 동 안 개미의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졌습니다. 가 이 책의 중심 사상입니다.'개미'가 출판되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편지를 써서 그들이 다시는 개미들을 죽일 수 없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멋진 일입니다. 그것은 책을 읽는 몇 시간 동안 그 사람들이 천 배나 더 작은 존재, 즉 그들의 부모들이 거나 고 생각했고 좋게 봐 준다고 해야 정도가 고작이었던 존재들과 감정이 통하는 것을 느꼈다는 것 을 의미합니다. 개미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영원히 우리와 나란히 걸 어갈 것이고, 우리의 뜨락 안에 자신들의 도시를 세우고 있는 이 동 물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장차 외계의 생물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개미를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의 습관적인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서 우리의 관점을 넓히는 것입니다. 개미만큼 작고 하찮은 것들을 이해 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우리의 사고 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그럼으 로써 우리 사람들끼리 서로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제 1 부 ▶ 개미 ▶ 제1장 일깨우는 자 "아시게 되겠지만 그건 당신이 기대하는 것이 전혀 아닐게요."공증인은 그 가옥이 역사적인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고 르네상스 시대에 늙은 현인들이 거기에 살았으며 그 현인들의 이름은 이제 생 각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계단을 내려가서 어둠침침한 복도로 들어갔다. 공증인은 어두운 복도에서 한참 더듬거리다가 누름단추 하나를 헛되이 눌러보 고는 투덜거렸다. "이런 제기! 이거 고장났구만."그들은 요란하게 벽을 더듬으면서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공증인 은 마침내 문을 찾아내어 열더니, 이번에는 전기 스위치를 제대로 누르고나서, 자기 고객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음을 깨달았다. "어디 편찮으시오, 웰즈 씨?" "일종의 공포증이에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둠에 대한 두려움인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벌써 한결 나아졌어요."그들은 집을 둘러보았다. 66평쯤 되는 지하층이었다. 밖으로 트인 곳이라고는 천장에 닿을락말락하게 나 있는 몇 안 되는 좁은 채광창 이 고작이었지만, 조나탕은 이 집이 마음에 들었다. 벽들은 모두 똑 같은 회색으로 도배를 해놓았고 어디에나 먼지가 쌓여 있었다.... 그렇다고 조나탕이 이러쿵저러쿵 까탈을 부릴 형편은 아니었다. 그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이것의 5분의 1쯤 될 터였다. 게다가 이제는 그 집의 집세를 낼 방도조차 막막하였다. 그가 일하던 자물 쇠 용역회사에서 최근에 그를 해고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에드몽 삼촌의 이 유산은 정말이지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거 나 다름없었다. 이틀 후, 조나탕은 아내 뤼시와 아들 니콜라와 우아르자자트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푸들 종의 불깐 개를 데리고 시바리트가 3번지에 자리를 잡았다. "이 회색 벽돌 말이예요, 이거 내가 보기에는 괜찮은데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치장할 수가 있잖아요. 여기에 있는 거 다 손을 보아야 되겠어요. 감옥을 호텔로 바꾸는 일이나 진배없어요."숱이 많은 살구빛 머리채를 들어올리면서 뤼시가 자기 생각을 털어놓았다. "내 방은 어디 있어요?"니콜라가 물었다. "저 안쪽 오른편에 있는 방이란다." "왕왕."개도 질세라 한마디를 내뱉는다. 그러고는 뤼시의 장딴지를 잘근 거리기 시작했다. 뤼시의 팔에 안겨 있는 것이 예전에 혼수로 장만 해 온 그릇들이라는 사실을 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탓에 개는 느닷없이 화장실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개의 주인은 화장실 문을 닫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아예 문을 잠가버렸다. 개가 문의 손잡이까지 뛰어올라 손잡이를 돌릴 수 있을 만큼 영악하기 때문이었다. "당신의 삼촌이 시원스럽게 인심을 쓰셨군요. 그분 잘 알아요?"뤼시가 말을 이었다. "에드몽 삼촌? 사실은 말이야.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라곤 아 주 어렸을 때 그 양반이 나를 거꾸로 들고 비행기태우기를 곧잘 하 셨다는 것뿐이야. 한번은 그게 너무나 무서웠던 나머지 위에서 그 양반한테 오줌을 싸버렸지."그 말 끝에 그들은 웃음을 나누었다. "겁많은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군요. 안 그래요?"조나탕은 짐짓 못 들은 체하고 말을 이었다. "그분은 나를 탓하지는 않고 우리 어머니에게 대뜸.'이런, 이 녀 석 싹수를 보아하니 비행사 만들기는 글렀군....'하시는 거야. 어머 니 말로는, 그 후로도 그분은 줄곧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세 심하게 관심을 기울여오셨다는데, 정작 나는 그 후로 다시는 그분을 뵌 적이 없어." "뭐 하는 분이었어요?" "학자였지. 생물학자였다든가."조나탕은 생각에 잠겼다. 결국 그는 자기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있는 셈이었다. 거기에서 7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벨로캉이 자리를 잡고 있다. 높 이 1미터, 지하에 50층, 지상에 50층이 있어, 그 일대에서는 가장 큰 도시이다. 거주자들의 수는 1,800만으로 추산된다. 연간 생산량 은 다음과 같다: 진딧물 분비꿀 50리터, 연지벌레 분비꿀 10리터, 느타리버섯 4킬로그램, 방출되는 돌 조각 1톤, 실용 통로 120킬로미 터, 지표 면적 2평방미터. 한 줄기 빛이 비쳐들었다. 다리 하나가 막 움직였다. 석 달 전, 겨울 잠에 들어간 이후 가장 먼저 보인 몸짓이다. 다른 다리 하나가 천천히 뻗어 나온다. 다리 끝에 달린 두 개의 발톱이 시나브로 틈새 를 벌린다. 세 번째 다리가 펴진다. 다음에 가슴이 펴지더니 하나의 생명이 몸을 추스른다. 그렇게 열 두 마리가 잠에서 깨어난다. 그들은 무색 무명한 피가 동맥망 속을 원활히 순환하게 하려고 바 르를 몸을 떨었다. 동맥 속은 반죽 같은 상태에서 리쾨르 같은 상태 가 되더니 다시 물과 같은 상태가 되었다. 심장이 조금씩조금씩 발 딱거리기 시작한다. 심장의 따뜻한 기운이 되돌아온다. 고도로 복잡 한 관절들이 회전을 한다. 보호판에 싸인 둥근 돌기 모양의 다리 관 절들은 재 깜냥대로 한껏 회전 운동을 해본다. 개미들이 일어난다. 그들의 몸이 다시 숨을 쉰다. 그들의 동작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고 낱낱으로 나뉘어 있다. 느릿느릿 추는 춤사 위 같다. 살며시 몸을 흔들고 바르르 몸을 떤다. 마치 기도를 하려 는 것처럼 앞다리를 입 앞으로 모은다. 그러나 기도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발톱을 적셔서 그것으로 더듬이를 닦으려는 것이다. 잠에서 깨어난 열두 마리의 개미들이 서로서로 몸을 비벼 준다. 그러고는 옆의 동료들을 깨워보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제 몸 을 추스를 힘만 겨우 남아 있을 뿐, 동료들에게 나누어 줄 에너지는 없다. 그들은 아직 어렵다는 것을 알고 깨우기를 포기한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조상처럼 몸이 굳어버린 동료들의 한가운데 를 힘겹게 빠져나와 거대한'바깥 세상'으로 향한다. 아직 싸늘한 피가 도는 그들 몸의 기관은 태양으로부터 열을 흡수해야만 한다. 기진 맥진한 개미들이 앞으로 나아간다. 한걸음한걸음이 힘겹기만 하다. 도로 누워서 수백만의 자기 동료들처럼 평안을 누리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다. 그러나 그건 안 될 말이다. 그들은 가장 먼저 깨 어난 개미들이다. 이제 온 도시에 다시금 생기를 불어넣어야 할 의 무가 그들에게 있는 것이다. 개미들이 도시의 거죽을 통과한다. 햇빛이 눈부셔 아무것도 볼 수 가 없다. 그러나 순수한 에너지가 몸에 와닿자 그들은 기력을 되찾는다. '햇살이 우리의 텅 빈 몸 안으로 들어와 고통에 겨운 우리의 근육 을 움직이고 갈라진 우리의 생각을 맺어주도다.'이 노래는 불개미 왕국 오천 년째에 만들어진 오래된 여명악이다. 그 시대에 벌써 불개미들은 따사로운 햇살과 접촉하는 순간에 머릿 속으로 노래를 부르고 싶어 했던 것이다. 밖으로 나오자 개미들은 절도있게 몸단장을 하기 시작한다. 하얀 침을 분비해서 그것을 턱과 다리에 바른다. 그러고는 솔질을 하듯 몸을 닦는다. 이 모두가 오랜 세월 동안 변함없이 이어내려온 의식 이다. 먼저 눈을 닦는다. 하나하나의 낱눈을 이루는 1,300개의 둥근 창들에서 먼지를 털어내고 촉촉하게 적셨다가 습기를 말린다. 더듬 이와 앞다리, 가운뎃다리, 뒷다리도 똑같은 방식으로 깨끗하게 매만 진다. 끝으로 붉은 갈색을 띤 아름다운 등판을 불똥처럼 반짝이도록 윤을 낸다. 먼저 깨어난 열두 마리의 개미들 중에는 생식 능력을 가진 한 마 리의 수개미도 들어 있다. 그는 벨로캉의 보통 개미들보다 조금 더 작다. 위턱도 다른 개미들보다 좁다. 그리고 앞으로 몇 개월만 있으 면 죽어야 하는 것이 그의 숙명이다. 그러나 수개미는 역시 다른 개 미들이 알지 못하는 유리한 신체 구조를 타고난다. 수개미 계급의 첫번째 특권은, 생식 능력을 가진 중요한 개미답게 눈이 다섯 개라는 점이다. 작은 공 모양으로 생긴 두 개의 커다란 겹눈으로는 180도까지 넓게 볼 수 있다. 또 이마에는 세 개의 홑눈 이 삼각형의 꼭지점 자리에 놓여 있다. 이 여분의 눈은 적외선 감지 기나 다름없는 것으로서, 어디에선가 열이 발생하면 그 원인이 무엇 이든 간에 아무리 캄캄한 어둠 속에서라도 먼 거리에서 그것을 탐지해 낼 수가 있 다. 십만 번째의 천 년을 맞이한 대규모 개미 도시의 거주자들 대부분 이 지하 생활 탓에 완전히 시력을 잃게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수개미의 그러한 특성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수개미에게 그러한 특성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수개미는(암컷들이 그러하듯) 날개가 있어서 교미를 하는 데 필요한 하루 동안의 비행 을 할 수가 있다. 그의 가슴은, 가운뎃가슴 등판이라고 불리는 방패 모양의 특수한 판으로 감싸여 있다. 또 수개미의 더듬이는 다른 개 미들의 더듬이에 비해 더 길고 더 예민하다. 생식 개미인 그 젊은 수개미는 햇살을 실컷 즐기면서 도시의 둥근 덮개 위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그러고는 충분히 몸이 덥혀지자 다시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일시적으로 전열개미 계급의 일원이 되 어 태양에너지를 옮기는 일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지하 3층의 통로를 돌아다닌다. 거기에 있는 개미들은 아직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얼어붙은 몸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더 듬이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개미들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 젊은 수컷은 자기 몸의 윤기로 잠을 깨우려고 일개미 한 마리를 향해 다리를 내민다. 다사로운 기운이 일개미의 몸에 닿자 기분 좋 은 방전이 일어난다. 초인종이 두 번 울리고 새앙쥐 걸음처럼 사뿐한 발소리가 들렸다. 오귀스타 할머니가 문에 달린 사슬을 벗기느라고 잠시 뜸을 들이고 나서 문을 열었다. 자식 둘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뒤로 할머니는 옛날의 추억을 되새기면서 아홉 평 남짓한 이 작은 집에서 칩거하고 있었다. 그런 삶이 행복할 리가 없을텐데도 할머니의 상냥한 성품은 예나 다름이 없었다. "이러는 게 우스광스럽다는 건 안다만 끌신을 신는게 좋겠다. 마룻바닥에 밀랍 을 칠했거든."조나탕은 할머니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할머니는 종종걸음으로 앞장서 걸으며, 그를 거실로 데리고 갔다. 거실의 많은 가구들에는 덮개를 씌워놓았다. 등받이가 있는 커다랗고 긴 의자의 가장자리에 앉으면서 조나탕은 그 플라스틱 의자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게 하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네가 와줘서 정말 기쁘다. 내 말이 믿기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렇 지 않아도 근간에 너를 한번 부르려고 했지." "아 그러셨어요?" "에드몽이 말이다. 너 주라고 하면서 나한테 맡긴 게 있단다. 편 지 한 통인데, 그 애 말이, 자기가 죽거든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 편지를 조나탕 너한테 꼭 전해 주라는 거였어." "편지를요?" "그래, 편지를.... 가만 있자, 내가 그 편지를 어디다 두었더라. 생각이 안 나네. 잠깐만 기다려봐, 생각 좀 해보구.... 그 애가 나 한테 편지를 주고, 내가 잘 보관하겠다고 말을 했지. 그런 다음에 내가 그 편지를 어떤 상자에 넣어 두었는데, 그 상자가 어떤 거였더 라.... 아, 틀림없이 큰 벽장 양철 상자 중의 하나일 게야."할머니는 끌신을 끌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세 발짝을 미끄러져 가서 멈추었다. "아참, 내 정신 좀 봐, 손님 대접이 말이 아니구나! 마편초 차 좀 마시련?" "좋지요."할머니는 부엌 안으로 들어가서 그릇들을 이리저리 옮겼다. "조나탕! 요즈음 어떻게 지내는지 얘기 좀 해다오."할머니가 부엌에서 소리쳤다. "음.... 썩 좋은 편은 아니예요. 직장에서 쫓겨났어요."할머니는 하얀 새앙쥐가 머리만 살짝 내밀고 살펴보듯이 문께에 잠시 머리만 내보이더니, 이내 기다랗고 파란 앞치마를 두른 모습 에, 걱정스러워하는 기색을 보이면서 전신을 다시 드러냈다. "회사에서 너를 내쫓았단 말이냐?" "예." "뭣 땜에?" "할머니도 아시다시피, 자물쇠 용역 회사라는 데가 특이한 데잖아 요.'자물쇠 SOS'라는 우리 회사는 파리 시내 어디드지 하루 24시간 아무 때고 부르면 달려가지요. 그런데, 제 동료 하나가 습격을 당한 뒤부터, 밤에 꺼림직한 동네에는 영 가고 싶지가 않더라고요. 그래 서 안가겠다고 버텼더니 그냥 잘라버리더군요." "잘했다. 실업자 안 되자고 몸 상하느니 차라리 실업자 되고 몸 보전하는 게 백번 나은 일이다." "게다가 주임하고도 사이가 안 좋았어요." "그런데 그 뭐냐,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어보겠다던 거는 어떻게 됐니? 내가 젊었을 적에는 그런 것을 누야쥬 공동체라고 부르곤 했었지" 할머니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는 뉴에이지를'누아쥬'라 고 발음하고 있었다. "피레네 산맥의 농장 일이 실패하고 나서 다 집어치웠어요. 뤼시 도 이 사람 저 사람 밥 해먹이고 설거지하는 일에 진저리를 내더군 요. 우리들 중에 기생충 같은 자들이 있었어요. 결국 서로 틀어지게 되었지요. 이젠 뤼시와 니콜라하고만 살아요. 그런데, 할머니는 어떻게 지내세요?" "나? 죽지 못해 사는 거지. 한 순간 한 순간 목숨 이어가는 게 어 느덧 내 일이 됐구나." "할머니는 행운을 누리셨어요. 천년이 바뀌는 때를 사셨잖아요." "그래? 한데 말이야, 새로운 천년을 맞았는데도 달라진 게 아무것 도 없으니 정말 놀랍지 뭐냐? 옛날에 내가 아주 어렸을 때만 해도 천년이 바뀌고 나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거라고 하더니만, 네가 알다시피 정작 나아진 게 없지 않니? 늙은이들은 여전히 고독 속에 서 살고, 실업자들이며 매연 내뿜는 자동차들로 여전히 말이야. 사 람들 생각조차 달라진 게 없어. 봐라, 재작년엔 로큰롤, 작년엔 초 현실주의를 재발견했다고 야단들을 떨고, 또 요즈음 신문에선 벌써 부터 올 여름에 복고풍의 짧은 치마가 유행할 거라고 떠들어대고 있 잖니. 이런 식으로 계속 나가면 지난 세기 초의 낡은 사상들도 머지 않아 다시 나오게 될거야. 공산주의라든가 정신 분석, 상대성 원리 따위 말이다."조나탕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몇 가지 달라진 게 있긴 있었어요.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길어졌고요, 이혼율, 대기 오염의 수준은 높아지고, 지하철 노선도 연장되었잖아 요." "다 쓸데없는 일이지. 난 말이다, 사람들이 저마다 개인용 비행기 를 갖고 발코니에서 비행기를 띄울 수 있으리라고 믿었단다.... 내 가 젊었을 땐 사람들이 핵 전쟁을 두려워했지. 정말이지 엄청나게 무서워했단다. 이제 100살을 눈앞에 두고 보니, 핵탄이 빚어낸 거대 한 버섯구름의 불길 속에서 이 지구와 함께 죽는다면 그래도 그럴싸 할 것 같애. 그렇게 죽는 대신에 나는 이제 썩은 감자처럼 죽어야 할 판이지 뭐냐. 썩은 감자 따위에 누가 신경을 쓰겠냐. 모두들 나 몰라라 하겠지." "무슨 말씀이세요, 할머니. 전혀 그렇지 않아요."할머니가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말을 이었다. "게다가 날씨가 너무 더워. 갈수록 더워져. 나 젊을 적에는 이렇 게 덥지 않았어. 겨울은 겨울다웠고 여름은 여름다웠지. 어떻게 된 게 이제는 삼복 더위가 3월부터 시작이야."할머니는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서, 범상치 않은 노련한 솜씨로 진 짜 감칠맛 나는 마편초 차를 만드는 데 필요한 비방을 빠뜨리지 않 으려고 바삐 움직였다. 성냥 긋는 소리, 옛날식 가스 레인지의 분사 구에서 가스 나오는 소리가 들리고나서, 할머니는 훨씬 더 느긋해진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건 그렇고, 네가 나를 찾아온 데는 필시 무슨 곡절이 있을텐 데. 요즘 세상에 이렇게 늙은이들을 만나러 오는 사람들은 없으니까 말이지." "어째 할머니 말씀이 꼬인 것 같은데요." "꼬는 게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그렇다는 거지, 다른 뜻 은 없어. 자, 내숭은 그만 떨고 무슨 일로 왔는지 얘기나 해봐라." "'그분' 얘기를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한테 집을 물려주셨는데 저는 그분을 알고 있지도 못하잖아요." "에드몽 말이냐? 에드몽에 대한 기억이 없단 말이지? 너는 잘 생 각이 안 나는 모양이다만, 네가 어렸을 때 그 애는 너를 거꾸로 들 고 비행기를 곧잘 태웠지 한번은 말이다. 이런 일도 있었...."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그건 저도 생각이 나요. 그런데 그 일 말고는 전혀 아는게 없어요."할머니는 의자 덮개가 너무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커다란 안락 의자에 앉았다. "에드몽은 뭐랄까. 인물이지, 아니 인물이었지. 아주 어렸을 때 벌써 네 삼촌은 많은 골칫거리를 나에게 안겨주곤 했지. 그 애 엄마 노릇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어. 예를 들자면 이런 거지. 장난감이 란 장난감은 분해했다가 재조립한답시고 죄다 박살을 내놓았어. 다 시 조립해내는 경우는 많지 않았지. 장난감만 박살을 냈으면 다행이 게! 뭐든지 다 분해를 하는 거야. 시계, 전축, 전기 칫솔 할 것 없 이. 한번은 냉장고까지 분해한 적이 있었지."할머니 말이 사실임을 확인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거실에 걸린 고 물 괘종 시계가 을씨년스럽게 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저 시계도 어 린 애드몽 때문에 온갖 쓴맛 신맛을 다 보았으리라. "게다가 에드몽에겐 이상한 버릇이 또 하나 있었지. 은신처를 만 드는 버릇이었어. 그 애는 다락방에다 이불이며 우산으로 저만의 공 간을 만들기도 했고, 제 방에다 의자와 모피 외투로 만든 적도 있단 다. 그 애는 그렇게 숨을 곳을 만들어 거기에 제가 모은 보물들을 쌓아놓고는 그 안에 틀어박혀 있기를 좋아했지. 그 안을 한번 들여 다보았더니, 방석들이며 그 애가 기계에서 빼낸 온갖 잡동사니들로 가득차 있더구나. 어떻게 보면 그곳이 꽤 아늑해 보이기도 했어." "어릴 적에는 누구나 다 그렇지요, 뭐...."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네 삼촌의 경우는 정도가 심했지. 그 애는 더 이상 침대에서 자지를 않았어. 한사코 제가 만든 둥지에서 만 자겠다는 거야. 이따금 며칠 낮을 꼬박 거기에 꼼짝 않고 틀어박 혀 있기도 했어. 마치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말이야. 오죽하면 에 드몽이 전생에 틀림없이 다람쥐였을 거라는 소리를 네 어미가 다 했겠니."조나탕은 할머니가 이야기에 신바람을 낼 수 있게 하려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루는 에드몽이 거실 탁자 다리 사이에 제 오두막을 지으려고 했지. 그게 꽃병의 물을 넘치게 한 마지막 물방울처럼 되고 말았어. 네 할아버지는 별로 화내는 일이 없는 분인데. 그날은 불같이 화를 내셨단다. 그 양반은 에드몽의 볼기를 때리고 둥지를 모두 부숴버리 더니 에드몽이 침대에서만 자도록 잡도리를 하셨지."그 말 끝에 할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부터 그 애와 우리 사이에 완전히 금이 갔단다. 어미와 자식 을 잇고 있던 탯줄이 끊어진 거나 다름없었어. 우리는 더 이상 에드 몽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었지.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 보 면, 그런 시련을 그 애가 겪었어야 했어. 세상이 언제까지고 제 맘 대로 되는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야 했던 거지. 그러지 못한 것이 나중에 그 애가 커서도 문제가 되었어. 에드몽은 학교 생활을 견뎌 내지 못했어.'어릴 적에는 누구나 다 그렇지요'라고 또 말할는지 모르겠다만, 에드몽의 경우는 정도가 지나쳤지. 선생님한테 심한 꾸 지람을 받은 것 때문에 화장실에서 제 허리띠로 목을 매다는 아이들 이 어디 흔하겠니? 에드몽은 말이다, 일곱 살 때 목을 매달았단다. 청소부가 용케 끌어내렸기에 망정이지." "삼촌은 감수성이 너무 예민했던가 봐요...." "감수성이 예민했다고? 글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자살 소동이 있고 일 년이 지나서 에드몽은 제 선생님 한 분을 가위로 찌르려 했 지. 심장을 겨누고 찔렀는데, 천만 다행으로 선생님의 궐련갑을 부 수는 것으로 그쳤어."할머니는 눈을 들어 천장을 보았다. 흩어졌던 추억들이 눈송이처 럼 할머니의 생각 속에 다시 내려쌓이는 듯했다. "그 일이 있은 뒤로는 그런 대로 괜찮았어. 용케도 몇몇 선생님들 이 그 애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지. 에드몽은 제 마음에 드는 과목에서는 만점을 맞고 나머지 과목에선 모두 영점을 맞았지. 언제 나 영점 아니면 만점이었어." "엄마 말로는 에드몽 삼촌이 천재였다던데요." "에드몽이 네 어미한테 털어놓기를, 자기는'절대적인 지식'을 얻 으려 한다고 했지. 그 때문에 에드몽이 네 어미의 마음을 사로잡았 던 거야. 네 어미는 열 살 때부터 전생이라는 것을 믿었는데, 에드 몽을 아인슈타인이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환생한 사람으로 생각했지." "게다가 다람쥐가 환생한 사람이라고도 했다면서요?" "물론이지. 부처님 말씀이'하나의 넋이 태어나면서 여러 목숨의 넋이 필요하다'고 하시지 않더냐." "삼촌은 지능 검사를 받은 적이 있나요?" "그럼, 그런데 결과가 아주 안 좋았어. 180점 만점에 23점을 맞았 으니까 경우에 해당하는 지능 지수지. 선생들 생각은, 그 애가 바보 라서 전문 교육 기관에 보내야 한다는 거였지. 그렇지만 나는 그 애 가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어린 에드몽은 그저'빗나가 있었던 것'뿐이야.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단다. 그 애가 겨우 열한 살이나 되었을까 할 땐데, 나보고 성냥개비 여섯 개만 가지고 정삼 각형 네 개를 만들어보라는 거야. 그게 쉽지 않지. 자 너도 한번 해 보면 알게다...."할머니는 부엌으로 가서 주전자에 슬쩍 눈길을 보내고는 성냥개비 여섯 개를 가지고 왔다. 조나탕은 잠시 머뭇거렸다. 될 것도 같았 다. 그는 성냥개비 여섯 개를 이리저리 놓아보았다. 그렇게 몇 분 동안 해보았지만 답을 찾아내지 못하고 결국 포기해야만 했다. "답이 뭐예요?"오귀스타 할머니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글쎄, 정작 그 애가 나한테 답을 가르쳐 준 적은 없었던 것 같구 나. 다만 내가 답을 찾는 것을 도와주려고 그 애가 해준 말은 기억 이 난다. 그 애가 그랬지.'다른 방식으로 생각해야 돼요.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도저히 답을 찾아낼 수 없어요.'라고 말이야. 상상해 봐라. 열한 살짜리 어린애 입에서 그런 묘리가 튀어나오다니 말이야. 어이구, 주전자에서 소리가 나는 것 같구나. 물이 뜨거워 졌을거야."할머니는 찻잔 두 개에 아주 진한 향기가 나는 노르스름한 액체를 담아 들고왔다. "네가 네 삼촌에게 관심을 갖는 걸 보니 정말 기쁘구나. 요즘엔 누가 죽으면 그 사람이 태어난 적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혀지기 일쑤 인데 말이야."조나탕은 성냥개비에서 손을 떼고 마편초 차를 몇 모금 홀홀 마셨다. "그 후로는 어떤 일이 있었나요?" "더 이상은 나도 아는 게 없다. 에드몽이 대학에서 자연 과학 공 부를 시작한 다음부터는 우리도 그 애 소식을 못 들었으니까. 네 어 미를 통해서 어렴풋하게 들은 얘기로는, 애드몽이 박사 과정을 훌륭 하게 마치고 어떤 식품 회사에서 일했다는구나. 그러다가 회사 그만 두고 아프리카에 갔다는 게야.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뒤로는 시바리 트 가에 살았다는데 죽을 때까지 아무도 그 동네에서 에드몽에 관한 얘기를 못들었다는구나." "삼촌은 어떻게 돌아가셨는데요?" "저런, 너 모르고 있었니? 얘기 들으면 믿기지 않을 게다. 모든 신문에서 그 얘기를 했지. 글쎄 에드몽이 말벌에 쏘여 죽었다는구나." "말벌에요? 어쩌다 그렇게 됐죠?" "혼자서 숲속을 거닐다가 부주의로 벌떼를 건드린 모양이야. 말벌 들이 일제히 에드몽에게 달려든 거지. 검시관이란 사람은'사람 몸 에 이렇게 벌에 쏘인 자국이 많은 것은 생전 처음 본다'고 주장했 지. 에드몽의 혈액에는 리터당 0.3그램의 독이 들어 있었다는거야." "무덤은 있나요?" "아니, 에드몽은 숲속에 있는 소나무 밑에 묻히고 싶어했단다." "삼촌 사진 가지고 계세요?" "저기 봐라, 저기 서랍장 위쪽 벽에 걸린 사진 말이야. 오른쪽이 네 어미, 쥐지다. 저렇게 젊은 네 어미 모습을 본 적이 있니? 왼쪽 이 에드몽이다."에드몽은 이마가 벗겨지고 뾰족한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으며, 귀 는 귓볼이 없고 눈썹 높이 위로 쫑긋 올라온 것이 카프카의 귀를 닮 았다.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짓고 있는 폼이 영락없는 장난꾸러기의 모습이다. 에드몽은 옆에 하얀 원피스를 입은 쉬지의 모습이 화사하다. 그 사진을 찍을 때로부터 몇 년 후에 쥐지는 결혼을 했다. 결혼을 했음 에도 쉬지는 결혼 전에 쓰던 웰즈라는 성을 간직하고 싶어했다. 그 것은 어떻게 보면, 자기가 낳은 자식에게 남편의 성을 붙이는 걸 원 치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사진을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자 에드몽 삼촌이 자기 누이의 머 리위로 손가락 두 개를 세우고 있는 모습이 조나탕의 눈에 들어왔다. "삼촌은 무척 장난기가 많았던가 봐요, 그렇지요?"오귀스타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딸의 화사한 얼굴을 다시 대 하자 애잔한 마음에, 너울을 뒤집어쓴 듯 눈앞이 흐릿해졌다. 쉬지 는 6년 전에 죽었다. 술취한 운전자가 몰고 가던 15톤 화물차가 쉬 지의 자동차를 좁은 골짜기로 밀어버렸던 것이다. 임종의 고통이 이 틀 동안 계속되었다. 쉬지는 에드몽을 불러달라고 했지만 에드몽은 올 형편이 아니었다. 그때도 그는 무슨 일엔가 정신을 팔고 있었던 것이다.... "에드몽 삼촌 얘기를 들려줄 수 있는 다른 사람 알고 계세요?" "가만 있자.... 에드몽이 자주 만나던 죽마고우가 하나 있다. 대 학도 같이 다녔지. 이름이 자종 브라젤이라던가. 나한테 그 사람 전 화번호가 아직 있을 게다."오귀스타 할머니는 재빨리 컴퓨터에 입력된 자료를 뒤져보고 나서 자종 브라젤의 주소를 조나탕에게 건네주었다. 할머니는 애정 어린 눈으로 손자를 바라보았다. 할머니가 보기에 조나탕은 웰즈 집안의 마지막 생존자이고 착한 어린애였다. "어서 차 마셔라. 식겠다. 프티트 마들렌도 있는데 좀 주랴? 메추 리 알을 깨넣고 반죽을 해서 내가 직접 만든 거란다." "아뇨, 됐어요. 가봐야 되겠어요. 저희 새 집으로 언제 놀러 오세 요. 세간살이도 다 들여놓았어요." "그렇게 하마. 아참, 기다려라. 편지를 가져가야지."커다란 벽장에서 쇠로 만든 상자들을 열심히 뒤진 끝에 할머니는 편지 봉투 하나를 찾아냈다. 봉투 겉면에는 힘찬 글씨로'조나탕 웰 즈에게'라고 씌어 있었다. 봉투 뚜껑은, 때가 되기 전까지는 열어보 지 못하도록 접착 테이프를 몇 겹으로 붙여서 단단히 봉해져 있었 다. 조나탕은 조심스럽게 봉투를 찢었다. 작은 노트 크기의 접힌 종 이 하나가 나왔다. 거기에는 단 하나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특히 당부하건대, 지하실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내려가지 말 것! 따스한 기운을 전해 받은 개미가 더듬이를 가볍게 떤다. 마치 오 랫동안 눈에 덮여 있던 자동차에 다시 시동을 걸 때 자동차가 떠는 모습 같다. 수개미는 같은 몸짓을 여러 번 되풀이한다. 일개미를 문 지르고 따뜻한 침을 발라준다. 생명이 되살아난다. 드디어 원동기가 움직이듯 생명력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로써 한차례의 겨울이 지나간 것이다. 마치 그런'가사상태'따위는 겪은 적도 없다는 듯이 모든 게 다시 시작되고 있다. 수개미는 열 에너지를 전해주려고 일개미를 다시 문지른다. 일개 미는 이제 원기를 회복했다. 수개미가 계속 애쓰고 있을 때, 일개미 는 더듬이를 수개미 쪽으로 뻗는다. 일개미도 더듬이로 수개미를 간 질인다. 일개미는 그가 누구인지를 알고 싶은 것이다. 일개미의 더듬이가 수개미의 머리를 벗어나 더듬이의 첫번째 마디 를 어루만지며 그의 나이를 읽는다. 그의 나이는 173일. 앞을 못 보 는 일개미이지만 두 번째 마디에서 그의 계급을 알아낸다. 그의 계 급은 생식 능력이 있는 수컷, 세 번째 마디에서는 그가 속한 종과 도시를 알아낸다. 어미 도시 벨로캉에서 출생한 숲속 불개미. 네번 째 마디에서는 산란 번호를 읽어내는데, 산란 번호가 그의 호칭이 된다. 그는 가을초부터 계산하여 327번째로 산란된 수개미 327호이다. 일개미는 그쯤에서 후각 정보의 해독을 멈춘다. 다른 마디에서는 후각 정보를 방출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마...더보기
    출처 : Daum 지식
    글쓴이 : 이루릴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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