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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려- 토사구팽 이야기
    생활 속 이야기(일반) 2007. 9. 28. 00:46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원조 범려 이야기

    다음은 사마천의 사기 월왕구천세가 편 말미에 있는 범려에 부분만 발췌하여 옮긴 것입니다. 토사구팽이라는 말은 기원전 6세기 중엽부터 5세기 중엽까지 공자와 같은 시대를 함께 살다가 죽은 범려가 만든 말이지만 그 말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범려 이후 300년 후에 태어나 초한전쟁 때 활약한 한신이라는 사람입니다. 인간사 토사구팽이라는 행태를 일찍이 체득하여 구천으로부터 그 화를 피한 사람은 구천이고 설마하다가 토사구팽이라는 원리를 몸으로 실현한 사람은 한신이라고 하겠습니다. 범려는 성공한 월왕 구천 곁에 계속 머물다가는 토사구팽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 곁을 떠나 제나라로 들어가 해변가에 자리잡고 그 큰 아들과 열심히 농사를 지어 수십만 금의 재화를 모았습니다. 이에 제나라 사람들은 그가 지혜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초빙하여 제나라의 재상자리를 맡겼습니다. 초빙을 받아서 하는 벼슬살이이기는 하지만 본국 사람들의 질시가 없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에 다시 상국의 자리를 내놓고 그 동안 모아둔 재물을 모두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제나라를 떠나 송나라 영토였던 지금의 하남성 정도시(定陶市)로 이주하여 교역에 종사하여 또다시 거만금의 재물을 모았습니다. 범려는 살던 나라를 세 번이나 옮기고도 세 번 다 세상에 이름을 떨치게 된 것입니다. 범려가 도 땅에서 늙어 죽어 그를 도주공이라고 불렀습니다. 범려에 대한 이야기는 사마천의 사기 화식열전에도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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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려는 월왕 구천을 모시면서 만난을 참고 견디며 있는 힘을 다하여 20여 년만에 결국은 구천이 오나라를 멸하여 회계산에서 당한 치욕을 갚을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구천은 회하(淮河)를 건너 북쪽으로 군사들을 진격시켜 제(齊)와 당진(唐晉) 두 강국과 대치하며 천하의 제후들을 향해 호령을 발하며 주왕실을 받들고 패자를 칭했다. 범려는 구천을 위해 상장군이 되었다. 이윽고 범려가 월나라로 돌아오자 그의 이름은 천하에 떨치게 되었다. 이에 범려는 그의 큰 이름을 오랫동안 보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구천의 사람됨은 어려움은 같이 지낼 수는 있지만 영화는 같이 지내기 어렵다고 생각해서 편지를 써서 월나라에서의 벼슬살이를 그만두겠다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신은 '그 군주가 근심하는 바가 있으면 그 신하된 자는 힘써 노력해야 하고, 그 군주가 욕됨을 입으면 그 신하는 죽음으로써 그 잘못을 속죄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옛날 대왕께서 회계산에서 갇혀 치욕을 당했음에도 신은 그 일로 해서 죽지 않은 것은 살아서 그 원수를 갚기 위해서 였습니다. 오늘 이미 그 치욕을 갚았으니, 청컨대 주군으로 하여금 회계산에서 치욕을 당하게 하여 지은 죄값을 받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
    구천이 말했다.
    " 나는 장차 월나라를 나누어 당신과 함께 다스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나의 뜻을 받들지 않는다면 죄를 받게 될 것이오! "
    범려가 다시 편지를 써서 자기의 뜻을 전했다.
    " 주군께서는 뜻한 바대로 하십시오. 저는 저 대로 제 뜻대로 하겠습니다."
    이어서 범려는 가볍고 간단한 귀중품을 싸가지고 가솔들과 함께 배를 타고 해상으로 나가 다른 나라로 가서 다시는 월나라로 돌아오지 않았다. 구천이 사라진 범려의 공을 기리어 회계산 일대를 그의 봉읍으로 정했다.
    범려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제나라로 들어가 성은 치이( 夷) 이름은 자피(子皮)로 바꾸어 살았다. 그는 해변에 살면서 그의 아들과 함께 온 힘을 다하여 농사에 힘써 재산을 모으기 시작했다. 제나라에

    ▶치이( 夷)/ 치이라는 말은 가죽으로 만든 자루를 말한다. 오왕 부차가 오자서를 죽여 그 시체를 치이( 夷)에 넣어 강물에 던졌다. 범려가 자기의 성을 치이로 지은 것은 자기와 비슷한 큰공을 지은 오자서가 그 군주에게 살해되어 가죽부대에 담겨 강물에 던져졌음에 반해 자기는 그 화를 피했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들어와 산지 그래 오래되지 않아 그는 십만전에 달하는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제나라 사람들이 범려가 어질고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데려가 재상으로 삼았다. 어느 날 범려가 탄식하며 말했다.
    " 집안을 일으켜 천금의 재산을 모으고, 다시 그 관직은 경상의 높은 자리에 앉게 되니, 평민의 신분으로 세상에 나와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존귀한 이름과 지위를 오랫동안 가지고 있게 되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기게 마련이라!"
    이렇게 생각한 범려는 재상의 인장을 제나라 군주에게 돌려주고 자기의 모든 재산을 꺼내어 친구와 마을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준 다음, 휴대하기 편리한 재보는 몸에 휴대하고 아무도 모르게 살던 곳을 떠나 당시 송나라 땅인 도(陶) 땅으로 갔다. 그는 도(陶) 땅이 천하의 중심에 있어 사통팔달로 통하는 도로가 나 있어 교역과 매매업에 종사하면 재산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이름을 바꾸어 도주공(陶朱公)이라 스스로 칭하고 아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물건을 사서 쌓아 놓았다가 시기를 기다려 되팔아 1할의 이윤을 남겼다. 그는 오래되지 않아 거만금을 모았고, 세상사람들은 도주공(陶朱公)을 찬양했다.

    도주공(陶朱公), 즉 범려가 도(陶) 땅에서 살면서, 늦은 나이에 막내아들을 낳았다. 이 막내아들이 장성할 때 쯤 해서 둘째아들이 초나라에 여행 갔다가 시비 끝에 사람을 죽여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범려가 소식을 듣고 말했다.
    " 사람을 죽였다면, 죽어 마땅하다. 그러나 내가 듣기에' 천금울 가진 부자집의 아들은 거리에서 죽지 않는다'라고 했다. "
    범려는 이어서 막내아들에게 초나라에 가서 소식을 알아보라고 당부의 말을 이른 다음 천일(千鎰)*의 황금을 준비하여 갈색의 용기 안에 넣어 소가 끄는 수레 한 대에 싣고 타고 가도록 했다.

    *황금 천일은 지금의 단위로 환산하면 300에서 400키로에 해당하는 중량임.

    이윽고 막내아들이 출발하려고 하자 장남이 나서서 자기가 가야만 한다고 청했다. 범려가 그 청을 들어주지 않자 장남이 말했다.
    " 장남은 집안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것이 그 임무입니다. 지금 동생이 죄를 지어 그를 구하려 가는데 장남을 보내지 않고 막내를 보내니 그것은 아버님께서 제가 불초한 자식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
    장남이 말을 마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 그 범려의 부인이 그 장남을 위해 말했다.
    " 지금 막내를 보낸다 한들 둘째를 살려서 데려 올지는 모르는 일인데, 그 보다 먼저 장남이 죽게 생겼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범려는 할 수 없이 장남을 보내면서 자기 둘째아들에 대한 선처를 부탁한다는 편지를 초나라의 현인 장(莊)선생에게 써서 봉한 다음 장남에게 주었다. 범려가 장남에게 당부의 말을 했다.
    " 너는 초나라에 당도하면 지금 가지고 가는 황금을 전부 장선생에게 전하라. 장선생이 이르는 대로 할 것이며, 심사숙고하여 절대로 그와 다투지 말라."
    드디어 장남이 동생을 구하기 위해 초나라로 길을 떠날 때 그는 별도로 범려 모르게 수백 금의 황금을 준비해 가져갔다.
    이윽고 장남이 초나라에 당도해서 장선생의 집을 찾았다. 장선생의 집은 성곽 담벼락에 붙어 있었는데 명아주풀을 헤치고 간신히 그 집 문 앞에 당도하여 보니 그 가세가 매우 빈한했다. 장남은 범려가 일러준 대로 편지와 함께 황금 천일을 장선생에게 주었다. 황금을 받고 편지 읽기를 마친 장선생이 장남을 향해 말했다.
    " 가능하면 하루라도 빨리 이 나라를 떠나시오. 절대 이 나라에 머물면 안될 것이오. 동생이 석방되더라도 절대로 그 연고를 알려고 하면 안 될 것이오."
    장남이 그 집에서 나와 떠나지 않고 장선생 몰래 초나라에 머물렀다. 그는 범려 몰래 가져간 황금을 초나라의 궁중에서 높은 관직을 살고 있던 귀인에게 바쳤다.
    장생이라는 사람은 비록 누추한 집에서 빈한하게 살고 있었지지만 청렴하고 강직한 사람이라고 초나라에 명성이 있어 초왕 이하 모든 사람들이 그를 스승으로 존경하고 있었다. 도주공이 보낸 황금을 받은 것은 그가 재물에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일이 성사된 후에 다시 주인에게 돌려주어 그에 대한 신용을 보이려고 한 것이었다. 그래서 장선생은 그 부인에게 황금에 대해 당부의 말을 했다.
    " 이 황금의 주인은 도주공의 것이오. 내가 어느 날 갑자기 병이 들어 미처 이 황금을 도주공에게 전해지 못하게 되거든 당신이 나를 대신해서 전해주기 바라오. 절대로 손대면 안될 것이오."
    그러나 범려의 장남은 장선생이 그가 준 황금으로 자기 동생을 석방하는데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줄로 생각했다.
    이윽고 잔선생이 시간을 내어 초왕을 찾아가 말했다.
    " 제가 밤하늘의 별들을 관찰해 보니 어떤 별 하나가 그 자리를 옮겼는데, 그것은 우리 초나라에 매우 불길한 징조입니다."
    초왕은 평소에 장선생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대책을 물었다. 장선생이 대답했다.
    " 오로지 덕을 베푸는 것만이 그 불길한 징조를 없앨 수 있습니다."
    초왕 " 선생께서는 돌아가 쉬시기 바랍니다. 말씀하신 바를 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초왕은 장선생을 보내고 나서 왕명을 내려 삼전(三錢)을 보관하는 창고들을 모두 봉하도록 했다. 범려의 장남에게서 뇌물을 받았던 귀인

    ▶삼전지부(三錢之府)/ 금은동으로 만든 화폐를 저장해 두던 창고를 말한다.

    이 깜짝 놀라 그를 찾아가 조만 간에 대사면령이 발하게 될 것이라고 알렸다. 대사면령이 내리게 될 줄은 어떻게 알았냐고 장남이 묻자 그 귀인이 대답했다.
    " 초나라 왕들은 옛날부터 사면령을 내릴 때는 언제나 삼전지부(三錢之府)의 문을 봉해 왔오. 어제 저녁에 왕이 삼전지부의 문을 봉하라는 명을 내렸었오."
    범려의 장남은 사면령이 내리면 그 동생도 마땅히 감옥에서 나올 것인데 장선생에게 준 황금 천일은 너무나 큰 재물임에도 불구하고 그 동생을 석방하는데 아무런 힘도 쓰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장남은 곧바로 장선생의 집을 찾아갔다. 장선생이 놀라 물었다.
    " 그대는 아직 이 나라를 떠나지 않고 있었던가?"
    범려의 장남이 대답했다.
    " 원래 이 나라를 떠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동생의 일을 부탁하러 왔었습니다만, 지금 사면령이 내리게 되어 동생이 스스로 풀려나게 될 것 같아 하직 인사를 드리려고 이렇게 들린 것입니다."
    장선생은 장남이 옛날 자기에게 준 황금을 찾기 위해 온 것이라 것을 알고 말했다.
    " 방안에 들어가면 그대가 준 황금이 있을 것이니 가지고 가게나."
    장남이 즉시 장선생의 방으로 들어가 황금을 취한 다음 떠나면서 스스로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기뻐했다.
    장선생은 어린아이에게 농락을 당한 것을 수치로 여겨 즉시 궁궐로 들어가 초왕을 배알하고 말했다.
    " 신이 전에 말씀드리기를 어떤 별이 움직여 나라에 불길한 징조가 있어 이를 막기 위해서는 덕을 베풀어야 한다고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 오늘 신이 집밖으로 나와 길을 걷는데 길가의 사람들은 모두 말하기를 도(陶) 땅의 부자인 주공(朱公)의 아들이 사람을 죽여 우리 초나라의 감옥에 갇혀 있는데 그 집안 사람이 많은 황금을 가지고 왕의 좌우에 있는 사람들에게 뇌물을 바침으로 해서, 지금 행하려고 하는 사면령도 대왕께서 덕을 베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도주공의 아들을 위해 행하시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초왕이 듣고 크게 노하여 말했다.
    " 과인이 비록 부덕한 사람이 될지언정, 어찌 도주공의 아들 한 사람만을 위해 덕을 베풀 수 있단 말이오!"
    초왕이 즉시 왕명을 발하여 도주공의 막내아들을 처형하라고 명하고, 다음 날이 되어서야 사면령을 내렸다. 도주공의 장남은 결국은 그 동생의 시신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장남이 집에 이르자 그 모친과 마을 사람들은 막내아들의 죽음을 매우 슬퍼하였으나 유독 범려 만은 오히려 웃음 지으며 그 장남에게 말했다.
    " 나는 원래 네가 동생을 살려서 데려오지 못할 것을 알았다. 네가 동생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단지 돈을 쓸 줄을 모르고 아까워했기 때문이다. 너는 어렸을 때부터 나와 함께 고생을 같이 겪어 어렵게 살아왔다. 그래서 너는 재물을 버리는 것을 참지 못한다. 그러나 네 막내동생은 태어날 때부터 우리가 이미 부자라는 것을 보았고 좋은 말이 끄는 마차를 끌고 다니며 토끼나 잡으러 다녔으니 어찌 그가 돈이 어떻게 생기는지 알기나 하겠느냐? 따라서 네 동생은 쉽게 재물을 버리고 또한 아까워 할 줄 모른다. 옛날 내가 막내를 보내려고 했던 것은 그가 능히 재물을 버릴 수 있어서였고 장남인 너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은 동생이 살아오지 못한 것은 다 하늘이 뜻이니 그렇게 슬퍼하지 말아라! 나는 네가 떠난 다음 네 동생의 시신이 오기만을 밤낮으로 기다렸다."

    범려는 세 번이나 나라를 옮기고도 매 번마다 이름을 천하에 떨쳤다. 단지 떠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머무는 곳에서는 반드시 이름을 얻었다. 범려가 도(陶) 땅에서 죽으니 사람들은 그를 도주공(陶朱公)이라 불러 세상에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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