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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도의 전통문화 흑치(黑齒) 풍습
    자료 2011. 3. 25. 23:28

     

    열도의 전통문화 흑치(黑齒) 풍습 : 오하구로(お齒黑)


    참고 자료 - 일본의 흑치(黑齒) 풍습
    흑치는 치아를 검게 칠하는 것으로 涅齒 또는 카메구로(鐵漿黑)라고도 한다.
    (박보영, 황춘섭,「한국ㆍ중국ㆍ일본 여성의 색조화장문화」,『복식 제39호』, 1998, p.228. 문광희,「『平家物語』에 나타난 복식자료 연구」,『 복식 제 50-5호』2000, p.165.)
    흑치는 고대 일본에서 행해졌던 풍습으로 平安朝 초기 이래 다시 행해져 상류층 여성과 젊은 궁인들 사이에서 색조 화장법으로 유행되었고, 12세기 초 토바천황(羽天皇 : 1107~1122) 때는 귀족남자들 사이에서도 유행되었으며, 20세기 초까지도 일본 여성들이 하고 있었던 풍습 중의 하나였다.
    통신사행록에 나타난 흑치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동사일기(1711년)』에는 "창녀와 미혼녀를 제외하고는 이에다 까맣게 칠을 하고, 그 눈썹을 다 뽑아 버리는 자도 있다" (임수간, 『해행총재9권-동사일기(1711)』, 민족문화추진회, 1977, p.274.) 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해사일기(1764년)』에는

    "이미 시집간 사람은 이를 물들이고 시집가지 않는 사람과 과부 및 창녀는 모두 물들이지 않는다. 이를 물들이는 법은 그 남편을 위해서 마음을 맹세하는 것이다" (조엄, 『해행총재7권-해사일기(1764)』, 민족 문화추진회, 1977, p.56.) 하여 주로 결혼한 여자가 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치아를 검게 물들일 때 사용되는 흑색 액체를 철장(鐵漿)이라고 한다. 이것은 철편을 술(酒)이나 식초(酸) 속에 담근 후 적당량의 물을 가해 밀폐시킨 후 툇마루나 마루 밑에 넣고 수개월이 지나면 갈색의 액체가 되는데 이것을 철장비(鐵漿沸)라는 놋쇠그릇에 넣고 끓여서 완성시킨다. (高春明, 『中國代婦女裝飾』, 학림출판사, 1992, p.687.)

     

    철장을 치아에 물들이는 방법은 우선 이쑤시개로 치아를 닦고 끓여 놓은 철장을 붓과 같은 깃털 이쑤시개에 묻히고 그 끝에 오배자분을 발라 치아에 도포하고 맑은 물로 헹구어 내면 된다. 철장을 물들이는 모습은 보기 흉하다고 해서 이를 물들일 때는 이른 새벽 다른 가족이 일어나기 전에 행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흑치의 풍습은 본래의 얼굴을 감추고자 하는 일본인의 은폐정서와 관련된다. 즉 일본 여성은 유교사상에 의해 맨 얼굴을 감추고 남성을 만나는 것을 도리라고 생각하여 일정한 연령에 달하면 색조화장과 함께 흑치화장을 하였다. 검게 빛나는 치아는 당시 일본인의 심미안으로는 매력적이었을 것이지만 본래의 흰 치아를 감추고자 하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박보영, 황춘섭, 「한국ㆍ중국ㆍ일본 여성의 색조화장문화」,『복식 제39호』, 1998, p.231.)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흰 이를 미인의 덕목으로 보았으므로, 그들의 풍속 중 이 흑치의 풍습은 통신사들의 눈에 매우 해괴하게 보였을 것이다.

    여기서, 흑치란, 초산에 철을 녹인 용액으로 이빨을 붉힌다고 하는 습관.

    흑치의 풍습 역사는 굉장히 낡다. 삼국지 『위지 왜인전』 에 “흑치국”등이라고 나타나며, 야요이 시대에 이미 흑치의 습관은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기원 3세기의 고분으로부터 출토한 사람뼈입니다. 이 인물의 이에 흑치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게다가 성덕태자도 흑치를 했고, 고사기(古事記)의 숭신 천황의 노래에도 흑치 노래가 있습니다.
    헤이안(平安)시대에 들어가고, 鳥羽천황시대. 태정관 좌장관인 화원이었던 有仁도 흑치입니다. 게다가 살피어 보면, 「源平盛衰記」 「헤이케모노가타리(平家物語)」 「義経記」등에서, 흑치 습관은 무사에게도 널리 퍼진 것의 기술이 있습니다. 더욱 시대는 내려서 전국시대. 흑치는 성인의 의식으로서 완전히 정착하고, 10세미만의 어린이에게 흑치를 행했습니다 . 이것등은 성인식으로 정략 결혼 시키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지요. 요즈음보다 흑치는 부녀자의 습관에 되어가고 있습니다.

    일본을 개항시킨 페리제독이 일본을 ‘검은 치아의 나라’로 규정한 것만 보아도 이 풍습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는지 알 수 있다. 이러한 풍습은 기생들에게도 받아들여져 첫 손님을 맞기 전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치아를 검게 물들였다고 한다.
    도쿠가와시대 그려진 그려진 그림 중 치아시술 장면을 보면 기혼여성의 표시 혹은 일류기생의 미적 상징으로 이를 검게 칠하고 있는 그림이 등장한다. 일본속담에 흑치는 영원불멸이며 부부화합을 뜻한다고 하여 신부는 신랑집에 가기 전에 흑치 염색을 받는 예식을 거쳐야 한다. 이 흑치의 진정한 의미는 남편에게 영원한 순종과 충성을 맹세한다는 것이다. 물감은 주로 탄닌 제2철이고 칠하는 도구는 작은 나뭇가지끝을 압박하거나 가닥을 잘게 부수어 붓처럼 만들어 치아에 칠하였고 부유층은 꿩이나 원앙깃털로 만든 솔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흑치 풍습은 1700년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이것은, 일본 독자적인 것은아니고, 중국 남동부(윈난성), 동남아시아에도 있었다고 하는 전통적인 화장법(입증되지 않았지만 충치예방의 효능도 있었다는 것)



    이 문화의 특징은, 서민의 문화라고 하는 것보다도, 귀족계급(지배계급)의 문화로서의 측면이 큰 것이다

    일본은 명치4년(1871)에 개화정책의 일환으로 단발령을 내려 남자들에게 상투를 잘라 버리게 했다. 그보다 1년 앞서서는 부인들에게 `오하구로(お齒黑)'라는 풍습에 금지령을 내렸다.

    그 당시까지 일본 여성들에겐 `여성의 이가 하얗게 보이는 건 무섭게 보인다'해서 중년 여성들은 쇳가루에 식초를 섞어서 만든 액체를 재(灰)와 비슷한 오배자가루에 섞어 나무붓으로 이에 문질러 새까맣게 염색했다.

    일본 여성들은 이걸 사흘에 한번씩 했다. 쇄국정책이 풀려 일본에 상륙한 외국인들은 먼저 일본 여성들의 새까만 이를 보고 기겁을 했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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