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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카페에서
    좋은 시, 좋은 글 2011. 5. 16. 01:44

    레테의 강---(중년들의 아름다운 공간)

    그리이스 신화에는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레테의 강(江)이 있다고 한다.

    저승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 강을 흐르는 망각의 물을 마셔야 하는데

    이 망각의 물은 꼭 저승으로 가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인간이 세상을

    살면서 과거를 잊어야만 새로운 삶이 약속된다는 비유로 쓰일 수 있다.

    불교에서도 과거심 불가득(지나간 시간을 잡을 수 없다), 현재심 불가득, 미래심 불가득이라고 해서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에 사로잡히지 않고 지금 여기를 온전히 받아들일 때 진정한 삶이 주어진다는 의미의

    말이 있다.

    이문열의 유일한 연애소설 '레테의 연가(戀歌)'에서는 레테라는 강이 

    초야의 신부가 결혼에 임하기 위해 버려야 하는 처녀 시절에 대한 비유로 쓰인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과거를 완전히 잊을 수 있고 버릴 수 있을까?

    유대 민족의 경전 탈무드에는 '서로 재혼인 사람끼리 결혼하면 침대에는 네 사람의

    남녀가 자게 된다'라는 격언이 있다. 서로 재혼하면 과거 배우자의 흔적이나 기억, 영향력 같은 것을

    고스란히 가져온다는 것을 빗댄 얘긴데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우리는 은연중에 과거의 사람에 대한 흔적을 흘리거나 물적인 증거를 노출할 수 있다.

    하물며 의식적인 경우에는 말해서 무엇하랴.

    사람은 누구나 시간 속의 존재이기에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 과거의 직접적인 산물이

    인간 존재이기에. 과거가 없는 사람은 마치 그림자 없는 유령, 투명 인간처럼 존재감 없는 인간이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상호간의 과거를 최대한 존중해 줘야 한다. 하지만 과거란 그 자체가 실체가 없는 유령일 뿐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현재의 존재이기에 과거를 존중해 주는 것은 그것이 배면에 그림자로서, 하나의 배경으로서

    은은히 드러날 때뿐이다. 그러지 않고 과거가 전면에 나서면 현재의 빛이 바래고 현재는 무색해 진다.

    우리가 과거는 과거로서, 묻어 두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거는 비밀일 때만, 비밀이 아니어도 전면에 나서지 않는 배경일 때만 한 사람의 존재감을 풍부하게 해 줄 수 있다.

    레테의 강은 현재 속을 흐른다. 거기에서 우리가 건져 올리는 얼굴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끊임없이 과거를 지나 미래로 가는

    현재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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