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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전 일본 경제의 교훈] 부동산 버블 붕괴가 한국에 던지는 교훈신문 2012. 11. 28. 18:28
일본 부동산 시장은 1980년대 중반 이후 급상승해 1990년대 초반 피크를 이루었다. 이후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면서 일본인들의 자산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지난 20년 일본 부동산 시장의 변화가 현재 한국 부동산 시장에 던지는 교훈을 짚어본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우리나라에는 부동산 불패신화가 지배해왔다. 주위에서 부동산 하나 잘 잡았느냐, 못 잡았느냐에 따라 재산 형성에 엄청난 차이를 나타내는 사례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런 현상이 오랫동안 계속되다 보니 대부분의 우리나라 가정은 지나치게 부동산에 편중된 자산구조를 갖게 됐다. 그러나 우리보다 이런 과정을 일찍 경험한 이웃나라 일본의 부동산 가격 장기 하락 현상을 보면 앞으로도 부동산 불패신화가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땅도 수입할 수 있는 시대
우선 '한국은 땅이 좁은 나라이기 때문에 다소 비싸게 사더라도 기다리면 언젠가는 오른다'는 생각이 앞으로도 유효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지금과 같이 국제화 시대에는 땅도 간접적으로 얼마든지 수입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 일본 도쿄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일이다. 당시 일본은 버블 경기의 영향으로 전국의 땅값이 엄청나게 상승해 있었다. 일본 도쿄 중심가에 왕궁이 있는 지역을 '지요다(千代田)구'라고 하는데, 당시 시세로 이 구 하나만 팔면 그 돈으로 캐나다 땅을 전부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지요다구'는 서울로 치면 창경원, 경복궁이 있는 종로구와 같은 지역이다. 그곳의 땅값이 얼마나 비싸기에 캐나다 전체의 땅값과 맞먹을 정도였을까. 도쿄만이 아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일본 전국의 땅값이 그렇게 비쌌다.
그런데 하루는 한 영국인 이코노미스트가 재테크 관련 강연회에 나와 계속 상승하고 있는 일본의 땅값이 머지않아 급락할 거라고 예측했다. 그 근거의 하나로 다음과 같은 영국의 경험을 소개했다.
"18세기 후반 영국에서는 장기간에 걸쳐 전국의 땅값이 상승했다. 영국은 섬나라다. 바다를 메워서 약간 땅을 넓힐 수는 있지만 땅 자체를 해외에서 사올 수는 없다. 땅은 수입해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다소 비싸게 사더라도 매입 후 계속 보유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오른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이것이 땅값이 장기적으로 상승한 이유였다. 그런데 계속 오르던 땅값은 어느 날 영국 정부가 내린 조치 하나로 급락세로 돌아섰다. 그 조치는 바로 유럽 대륙으로부터 밀수입을 자유화하는 조치였다. 영국은 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다.
그 밀을 해외에서 수입하지 못하고 영국 내에서 생산되는 밀밖에 먹을 수 없을 때에는 인구가 늘거나 경제가 성장해 밀값이 오르게 되면 밀을 생산하는 영국의 땅값도 같이 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밀수입이 자유화되면서 해외로부터 영국 내 가격의 절반 또는 3분의 1 가격으로 밀을 사올 수 있게 됐다. 이는 간접적으로 땅을 싸게 사오는 것과 똑같은 효과가 있다. 이런 인식이 퍼지면서 영국의 땅값이 하락세로 돌아선 것이다."
영국인 이코노미스트의 예측대로 일본의 땅값은 1991년을 정점으로 20년 넘게 하락국면이 계속되고 있다. 1974년을 100으로 한 일본 전국 상업용지 가격지수는 1991년 248까지 치솟았다가 2009년에는 72까지 하락했다.
버블 붕괴의 영향도 컸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화가 진행되면서 땅도 간접적으로 수입해 올 수 있다는 영국의 경험이 일본에서도 나타났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한국도 예외일 수는 없다. 농산물 수입의 자유화, 해외여행 자유화, 국내 기업의 해외 이전 등으로 우리나라도 이제는 얼마든지 땅을 간접적으로 수입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해외에서 쌀을 싸게 수입해오면 김제평야, 평택평야의 땅값 하락에 영향을 준다. 지금 인도, 중국, 베트남 등지에서 한국 기업들에 공장 부지를 무상에 가까운 값으로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많이 하고 있다. 만약 한국 기업이 이 제안을 받아들여 해외로 이전한다면 그 기업의 공장이 있던 지역의 땅값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그 지역의 관민이 노력을 한 결과 기업이 모여들고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땅값이 오를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국제화 시대에 '한국은 땅이 좁은 나라니까 땅값은 기다리면 언젠가는 오른다. 땅에 묻어 두는 게 최고다'라는 생각만은 버려야 할 것이다.
주택에 대한 인식 변화
다음은 주택에 대한 인식 변화다. 한국보다 20~30년 앞서서 고령화가 진행돼온 일본의 주택가격 추이, 주택에 대한 인식 변화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다. 주택은 균질화돼 있지 않기 때문에 지가지수와 같은 지수는 발표되지 않는다. 따라서 도쿄 수도권에 살고 있는 필자의 일본인 친구가 보유하고 있는 92.4㎡(28평형) 아파트 가격의 사례를 소개하기로 한다.
이 일본인 친구는 92.4㎡ 아파트를 1984년에 1200만 엔에 샀는데 이것이 일본의 집값이 피크였던 1990년에는 3600만 엔까지 올랐다고 한다. 6년 만에 3배 수준으로 오른 것이다. 과거 한국의 집값 상승률 못지않은 수준이다. 이 시기는 일본의 단카이 세대(1947~50년생)들이 왕성하게 내 집 마련을 하던 시기였다.
그렇다면 일본의 집값이 피크를 보였던 1990년은 일본에서 어떤 때인가. 일본에서 버블 경기의 정점을 보였던 시기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40세 연령인구의 숫자가 가장 많았을 때다.
선진국의 경험에서 보면 40세 연령인구가 가장 많을 때 그 나라의 집값이 피크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 나이 무렵에 집장만을 가장 많이 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한국의 경우에는 1971년도 출생자가 110만 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들이 40세가 된 해는 2011년이다.
그런데 그렇게 올랐던 이 친구의 집값이 최근에는 400만 엔 수준까지 떨어졌다. 도쿄 중심가에서 지하철로 50분~1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 우리 돈으로 6000만 원도 안 되는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떨어질 수 있는가.
원리는 간단하다. 공급은 늘고 수요는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나라마다 사회간접자본(SOC) 투자가 끝나면서 주택 공급이 크게 느는 시기가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1970년대, 일본의 경우에는 1980년대 후반이 이 시기였다. 한국은 최근 몇 년 전부터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문제는 '늘어난 집들을 누가 사줄 것인가'다. 1947~50년 사이에 4.4명 수준이던 일본의 출산율은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지금까지 1.3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 세대가 결혼할 때는 세 쌍 중에서 두 쌍이 양쪽 부모로부터 집을 한 채씩 물려받는다는 계산이 된다.
그런데 일본의 주택보급률은 2008년 기준으로 113%다. 13%에 해당하는 756채가 비어있다. 주택정책의 우선순위를 주택 공급에서 빈집 처리로 바꿔야 할 정도로 집이 남아돌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내 집 마련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다고 한다. 기다리고 있으면 어차피 양가로부터 집 한 채씩 물려받을 텐데 굳이 집을 사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베이비부머 은퇴 후 한국 부동산 시장이 나갈 방향
그건 일본의 이야기이지 우리는 다르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현재는 다르다. 그러나 변화의 속도는 우리나라가 훨씬 더 빠르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출산율 추이를 보면, 1950~55년 5.05명, 1955~60년 6.33명, 1960~65년 5.63명이었다. 1960년대에서 1970년 초반 사이에 출생한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대량으로 집을 사기 시작하면서, 여기에 핵가족화와 투기까지 가세돼 한국의 집값이 급등한 것이다.
그런데 2005년의 출생률은 1.08명, 2010년에는 출산장려 정책의 효과도 없이 1.22명이었다. 20~30년 후 이들이 결혼할 쯤 되면 외동아들과 외동딸이 결혼한다는 계산이 된다. 신랑도 신부도 양가 부모로부터 집 한 채씩 물려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2009년 말 현재 우리나라의 전국 평균 실주택보급률은 101%였다. 서울의 경우는 93%로 낮은 수준이지만 여기에는 원룸과 오피스텔이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이들을 포함시키면 100%를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장기 주택 수요가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임을 나타내는 통계인 것이다. 또한 이런 통계가 나오면 집값은 미리 반영돼 떨어진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형편은 이런데도 한국 50~60대 세대들의 자산은 대부분 부동산에 집중돼 있다. 지난해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가 수도권에 거주하는 베이비부머(1955~63년생) 500세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평균 총자산 5억4000만 원, 평균 부채액 6000만 원, 따라서 순자산액은 4억8000만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정도 재산이면 그럭저럭 노후생활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4억8000만 원 중 4억6000만 원이 현재 살고 있는 집값이라는 것이다. 금융자산은 2000만 원밖에 안 되는 것이다. 결국은 집을 팔아서 생활비를 충당하는 방법밖에 없을 텐데 700만 베이비부머 세대가 집을 팔려고 내놓기 시작하면 그때 집값은 어떻게 될 것인지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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