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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세계 신화에 나타나는 뱀이야기
    생활 속 이야기(일반) 2013. 1. 1. 01:14

     

    2013 01/01주간경향 1007호
    지혜를 전해주는 뱀 이야기는 신화학자들이 지적하는 원형의 이야기처럼 인류 신화 곳곳에 담겨 있다.

    2013년 계사년(癸巳年)은 뱀의 해다.

    중국 창조신화는 인간의 얼굴에 뱀의 몸통을 지닌 두 창조주의 존재를 표현하고 있다. 복희와 여와. 실크로드 출토 벽화에서 복희와 여와는 몸통을 서로 꼰 채, 자와 컴퍼스를 들고 천지와 우주를 창조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여와는 태초의 세상에 인간이 없는 것을 보고 슬퍼하여 황토와 물을 섞어 진흙을 만들고 생명의 끈을 이어 인류를 만들었다 한다. 결혼제도와 자손을 잇는 것도 여와의 조화라고 전한다. 복희는 인간에게 불을 주고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창세기의 정경은 비단 중국뿐 아니라 범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다. 대홍수, 진흙으로 빚어 만든 인간, 지혜를 전해주는 뱀 이야기는 신화학자들이 지적하는 원형의 이야기처럼 인류 신화 곳곳에 담겨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관에 전시돼 있는 ‘창조신 복희와 여와’. | 경향신문

     

    생명의 신성이자 파괴의 상징
    ‘복희여와도’처럼 두 마리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모습은 요즘도 흔히 볼 수 있는 형상이다. 군대 의무병과의 상징마크는 두 마리 뱀이 지팡이를 감아 올라가는 형상이다. 이는 전령의 신이며 다산과 풍요를 관장한다는 헤르메스의 지팡이다. 또한 구급차에는 한 마리 뱀이 지팡이를 감고 올라가는 의료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뱀지팡이가 그려져 있다. 이는 세계보건기구의 상징 문양이기도 하다.

    헤르메스의 지팡이와 아스클레피오스의 뱀지팡이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 속의 괴물 메두사 이야기에서 서로 만나고 있다. 메두사의 머리카락은 뱀이다. 이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몰래 정을 통하다 아테나 여신에게 들켜 저주 때문에 흉악한 모습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영웅 페르세우스는 아테나의 도움으로 헤르메스의 날개신발을 빌려 메두사의 목을 베는 데 성공한다. 메두사의 목에서 흘러나온 피에서 하늘을 나는 말 페가수스가 태어났고, 그 피는 맹독으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힘을 지녔으며, 의료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는 그 피를 써서 인간의 병을 치료했다고 전해진다. 헤르메스와 아스클레피오스가 가진 뱀지팡이의 근원이다. 최근 뱀독에서 항암제와 각종 질병치료제가 개발되고 있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죽음은 삶의 다른 면이며 소멸과 재생이 공존한다는 지혜를 신화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뱀의 맹독은 그 치명적인 위력 때문에 인간을 두려움에 떨게 한다. 때문에 뱀은 생명과 치유의 신성을 표현할 뿐 아니라 죽음과 파괴를 상징하는 신의 강력한 권능을 나타낼 때도 있다. 힌두교 파괴의 신 시바신은 푸른 얼굴과 부은 목으로 그려진다. 인간을 위해 세상의 독을 모두 마셨기 때문에 푸른 얼굴을 지녔다는 것이다. 또 손에는 독뱀을 그러잡고 있다. 물리면 단박에 목숨을 빼앗기는 킹코브라는 인도에서 가장 흔한 생명의 위협이다. 몬순으로 홍수가 왔을 때 물에 빠져 죽는 사람보다 떠내려 온 뱀에게 물려죽는 수가 더 많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만큼 죽음은 삶만큼이나 가깝고 숨을 죽인 채 우리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

    성경에는 사악한 존재로 표현
    그러나 이처럼 무서운 킹코브라는 때때로 진리를 지키고 세상의 혼돈과 폭력으로부터 평온을 유지하는 존재로 표현된다. 우리나라와 중국 등 북방 불상들은 그 배경을 연꽃 또는 불꽃의 광배(光背)로 표현한 반면, 인도와 남방의 불상들은 목덜미를 활짝 펴고 공격 채비를 갖춘 코브라의 모습으로 종종 그려진다. 불상뿐 아니라 자이나교 교주 마하비라의 성상 또한 코브라가 새겨졌다. 불교의 전설에 따르면 깨달음 직전 깊은 명상에 든 부처를 숲속의 사신(蛇神)이 독충과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지켰다고 한다. 코브라가 광배에 새겨진 것은 그 이야기를 직접 드러내고 있을 뿐더러,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죽음보다 더 강한 권능이 필요하다는 속내를 담고 있다.

     



     

     

    16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카라바조가 그린 ‘메두사의 머리’. | 경향신문

     

    인도, 태국, 캄보디아 등을 잇는 남방 신화에는 뱀이 우주의 생기와 대지의 뜻을 전하는 전령, 진리의 수호자로 숭배된다. 농사철이 끝날 때 죽음처럼 자취를 감춘 뱀은 이른 봄이 오면 다시 활기찬 모습으로 나타나 또 다시 생명의 계절이 시작됐음을 알린다. 물꼬를 트고 비를 내리는 농경과 생산의 현장에 늘 존재하는 것이 뱀이다. 허물을 벗음으로써 언제나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고 자기 한계를 탈피하는 생명체이다. 때문에 신화 속의 뱀은 영겁의 시간을 지키며 끊임없이 재생하는 생명의 기운을 담고 있다.

    신화의 뱀이 늘 긍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 성경은 뱀을 인간을 타락으로 이끈 사악한 존재로 표현한다. 구약성서 창세기에서 뱀은 태초의 여인 이브에게 금단의 열매를 따먹으라고 유혹한다.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지고 신과 같이 되어 선과 악을 알 수 있게 된다고 속삭인다. 그 결과 인간은 낙원에서 추방되고 노동의 고통을 짊어졌으며 뱀은 영원한 저주로 온몸으로 땅을 기어가게 됐다고 전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뱀은 신의 피조물에게 지혜와 선악의 분별을 가르침으로써, 신으로부터 독립된 인간의 길을 걷게 한 것이다.

    신화학자들은 대체로 농경의 전통이 강한 곳에서는 뱀을 긍정적인 신성으로 받드는 경향이 크고, 유목문화 속에서는 그 반대인 경우가 종종 있다고 설명한다. 문화에 따라 대자연의 전령과 생명의 기운으로 파악하고, 다른 편에서는 가축을 물어 죽이는 사악한 존재로 본다는 것이다. 신화가 직설적인 이야기뿐 아니라 인류가 겪은 경험과 드라마의 다양한 면을 담고 있기 때문에 동일한 것도 때와 경우에 따라 달리 표현될 수 있다. 어찌됐든 동서양의 창조신화 속에서 뱀은 빼놓을 수 없는 신성의 표현이다.

    신화 속의 뱀은 대부분 지혜와 변화와 재생과 탈피를 상징한다. 과거의 흔적으로부터 허물을 벗어 거듭나며,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생명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게다가 인간의 지혜를 밝혀 악을 물리치는 진실의 수호자가 신화 속 뱀의 상징이다. 2013년 계사년, 뱀이 전하는 생명과 치유와 지혜의 에너지가 가득찬 새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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