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스티브 잡스는 있고 이병철은 없는 것은?
    기타 2014. 3. 17. 22:30
           
     
    <굿소사이어티 칼럼>우리 교과서에 기업가정신 서술해야
    세계 최고(最古) 기업 일본의 콩고구미도 백제인이 창업

    한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기업은 두산이다. 118년의 역사를 가졌다. 1896년 장돌뱅이 보부상이던 박승직이 배오개에 자기 이름을 내걸고 방승직상점을 연 것이 두산의 출발이다. 두산이라는 이름은 해방 이후 박승직이 장남인 박두병에게 회사를 넘기면서 지어준 새로운 기업명이다. 말(斗)이 쌓여서 산(山)처럼 되라는 뜻이다.

    두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우리 기업의 역사가 짧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기업은 콩고구미(金剛組의 일본식 발음)인데 역사가 무려 1436년이나 된다. 설립 년도는 서기 578년, 한국 최장수 기업 두산보다 무려 1300년이나 더 역사가 길다. 한국 기업의 역사는 참 짧다.

    세계 최장수 기업은 우리 조상이 만들었다?

    그런데 더욱 놀랍고 흥미로운 사실은 콩고구미의 설립자가 백제인 유중광이었고, 2006년 다카마쓰라는 일본계 기업에 의해 인수될 때까지 38대를 유중광의 후손에 의해서 경영권이 이어져 왔다는 사실이다. 한반도의 장인과 상인들은 기업을 남기지 못한 것은 비즈니스를 인정하지 않았던 순전히 우리의 제도와 인식 탓이었다.

    조선도공의 이야기도 기업가와 기업활동을 대하는 태도가 경제에 어떤 차이를 가져오는지 잘 보여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 때 조선의 도공들을 대량으로 납치해간다. 흥미로운 것은 그 이후에 벌어진 일이다.

    조선도공들은 일본에서 화려한 문양의 자기를 개발하는 데에 성공했고, 그 자기들이 중국의 자기를 누르고 17~18세기 유럽의 도자기 시장을 석권한다. 사쓰마 도자기, 이마리 도자기 등 조선 도공의 후손들은 아직도 일본에서 도자기 비즈니스로 번영을 누리고 있다. 반면 조선에는 도공의 흔적들도 찾을 수 없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일본 열도 사람들은 비즈니스를 제법 인정한 반면 한반도의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경제교과서 재미없고, 추상적 이야기만 가득

    이런 정도의 이야기는 우리의 모든 아이들이 상식으로 알아두었으면 좋겠다. 재미도 있을뿐더러 교훈도 담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아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선생님이 모르기 때문이다. 경제교과서에 이런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면 상황은 무척 달랐을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을 위한 경제교과서는 너무 추상적이다. 대학 경제원론의 축소판 같아 보이기도 한다. 수요 공급의 법칙, 인플레이션, 환율, 국제수지...기업가 이야기는 찾기 어렵다. 물론 추상적 경제 개념들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그것을 얼마나 기억할까? 시험 보고 나면 다 잊어버리고 마는 것 아닐까. 그러나 역사 속에서 살아 숨쉬던 상인과 기업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평생 못 잊을 인생의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미국 최대 교과서 출판사인 프렌티스 홀(Prentice Hall)의 고교 경제교과서에는 존 록펠러, 앤드루 카네기, 빌 게이츠 등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가들의 업적을 서술하고 있다. 사진은 프렌티스 홀이 만들어낸 교과서들 표지.ⓒ프렌티스 홀

    정주영의 주베일 산업항 공사 성공신화의 사례

    경제교과서에서 기업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교과서 제작자들이나 선생님들의 탓만은 아니다. 교과서에 넣을 정도로 탄탄하게 연구되고 정리된 기업가의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가정신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필자 같은 사람들의 게으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위인전 스타일의 기업가 이야기들이 있기는 하다. 월간조선이 펴낸 한국자본주의 개척자들이라는 책도 있고, 이병철, 정주영 등의 자서전, 상공회의소가 펴낸 만화로 본 창업기업가들 이야기, FKI 미디어가 펴낸 1세대 창업 기업가들 이야기 등이 모두 한국의 성공한 기업가들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 한국경영사학회에서도 기업가들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들이 연구되어 왔다. 매우 소중한 자료들이다.

    그러나 이런 자료들은 교과서에 들어가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기업가의 일대기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기업가가 어떤 시대적 상황에서 어떤 활동을 통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이루어질 때에 비로소 기업가와 기업가정신을 교과서에 까지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 정주영 회장의 주베일 항구 공사 에피소드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70년대 초반 오일쇼크로 전세계가 불경기에 시달릴 때 정주영은 해외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로 진출한다. 그 당시 건설산업은 전형적인 내수산업이어서 건설로 해외 진출하는 일은 한국인에게 엄두가 안 나는 일이었지만 정주영은 해외진출을 감행했다. 그리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선진국의 건설회사들을 제치고 9억3114만 달러에 주베일항구 공사를 따낸다. 문제는 그 돈으로 공사를 완수하는 것. 공사비가 최소 12억불 이상 예상되는 상황에서 그는 원가를 절감하고 공기를 단축하기 위해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모험을 강행한다.

    높이 36미터짜리 항구용 철구조물 89개를 울산현대조선소에서 만들어 주베일 앞바다까지 끌고 간 것이다. 누구나 바다 속에 들어가서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온 항구의 수중 구조물을 육상에서 만들어 물속에 집어 넣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이런 방식의 공사에 들어간 공사원가는 매우 낮았기 때문에 현대건설은 많은 이윤을 남긴다. 그리고 그저 그런 중견기업 현대는 일약 재계 순위 3위의 기업으로 도약한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위인전 방식의 스토리다. 이 이야기가 교과서에 들어갈 정도가 되려면 주변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가 포함되어야 한다.

    나는 왜 ‘대한민국 기업가 열전’ 강의를 하는가

    이 공사로 인해서 거래 상대방인 사우디아라비아도 큰 이익을 본다. 12억 달러는 지불했어야 할 공사를 9억 3114만 달러에 마칠 수 있었으니 2억 7천만 달러를 번 셈이다. 게다가 다른 기업들의 공사기간은 44개월이었는데 현대건설은 그것을 36개월로 단축했으니 8개월 동안 항구를 가동할 수 있어 또 큰 이익을 보았다.

    한국의 근로자들도 큰 덕을 보았다. 건설업의 일자리는 국내를 벗어날 수 없었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건설근로자의 해외진출이 이루어졌고 그로 인해서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다른 건설기업들도 이익을 봤다. 그 때까지 한국 건설회사들은 해외진출을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현대건설의 주베일에서의 성공은 다른 건설기업들에도 자신감을 불러 일으켜서 너도 나도 중동진출에 나서게 된 것이다. 중동건설 붐이 불게 된 것이다. 그 이후 한국의 건설산업은 대표적인 수출산업, 달러박스로 거듭나게 된다.

    필자는 최근 들어 ‘대한민국 기업가 열전’이라는 제목의 강의를 종종 한다. 콩고구미에서 가장 최근의 하림 김홍국 회장에 이르는 기업가의 역사 이야기다. 시전 육의전 등 조선까지의 상인들, 김성수 박흥식 등 일제 강점기의 기업가들, 이병철 정주영 등 해방 이후 창업 기업가들, 그리고 농업으로 성공을 거둔 하림의 김홍국 회장 등이 등장한다. 청중들의 반응도 좋다. 강의를 확대해서 10부작 정도로 해보려 하니 필자 혼자서는 엄두가 안 나는 일이었다.

    할만한 교수님들에게 나눠서 하자고 제안을 해보니 다들 손사래를 친다. 연구해야 할 것은 많은데, 얼마나 그 콘텐츠를 써먹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한마디로 남는 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말이 맞다. 아직 기업가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콘텐츠 개발이 잘 안되고 그러다 보니 교과서에 넣을 만한 콘텐츠가 없다. 그래도 안 되는 것을 되게 만드는 것이 기업가정신 아닌가. 나라도 시간을 내서 한번 해볼까, 이 글을 쓰면서 궁리해본다.

    글/김정호 연세대 특임교수·프리덤팩토리 대표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