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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퇴 남성 1000명을 만나보니 '나는 은퇴 체질' 그들의 공통점은
    신문 2016. 8. 22. 16:22

    입력 : 2016.08.22 16:08

    50대 남성의 고독사가 늘고 있다. 이상한 건 50대 남자들의 고독사가 사회적으로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노인의 고독사나 젊은이의 자살에 대해서는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사회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외쳐대지만 50대 남자들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왜일까. 설마, 50대는 죽어도 아깝지 않은 나이라서?

    짚이는 게 없는 건 아니다. 50대 남성, 특히 50대 은퇴자는 일종의 ‘사각지대’에 속해 있다. 이들은 한창 일해야 할 나이에 일터에서 밀려났다는 점에서는 노인과도 비슷한 위치에 있지만, 노인 대접을 받기에는 너무 젊고 건강하다. 그러니 복지정책의 대상도 되기 힘든 것이다. 50대는 노인복지관의 프로그램에도 참여하지 못한다. 슬프게도 이들이 갈 곳은 많지 않다. 산밖에. 이 점에서 50대가 되면, 아니 40대부터 이미 일터에서 밀려날 것을 걱정해야 하는 사회는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사회다. 정년 연장 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이끌어내고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하는 이유이다.


    무능한 가장은 살 가치가 없다?

    하지만 50대 남자들에게도 책임은 있다. 10년 이상 ‘은퇴자 연구’를 하면서 수많은 은퇴자를 만나본 나는 남자들의 관심이 ‘경제적 빈곤’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 너무 안타까웠다. 스스로를 ‘돈 버는 기계’처럼 여기는 남자들은 ‘돈 없으면 죽는다’ ‘무능한 가장은 살 가치도 없다’ ‘일을 그만두면 무조건 불행하고 늙을수록 더 불행해진다’라는 식의 단순하고 직선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런 남성일수록 가족 간의 소통이나 공감이 필요한 사안에도 ‘돈 못 번다고 나를 무시하나’라며 분노를 폭발하기 일쑤였다.

    반면에 은퇴 생활에 잘 적응하는 정도를 넘어서 그 이상의 ‘기쁨’을 느끼는 사람도 꽤 여럿 만났는데, 대표적인 사람이 A(57)씨였다. 그는 은행이 합병되는 과정에서 억울하게 감원당한 후 일 년 이상이나 불면증에 시달렸고 우울증 약도 먹었다고 한다. 그때 돈 걱정을 포함해서 온갖 종류의 걱정과 불안, 그리고 고독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은퇴 직후의 죽을 것 같던 고통이 결과적으론 약이 되었다. A씨는 그동안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것,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왔던 것에 대해 뼈저리게 반성했다. 그리곤 퇴직 2년 차에 친구 12명과 돈을 모아서 월세 50만원짜리 오피스텔을 얻고 사무실 겸 놀이터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인생의 의미와 재미를 되찾았다.

    A씨의 사례는 은퇴 후의 가족이나 친구관계 등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A씨는 은퇴 직후에 가족들 앞에서 퇴직금, 연금 등 재정 상태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고, 지출의 우선순위도 정하고, 포기할 건 포기하자고 가족을 설득했다. 무엇보다 A씨는 친구들과의 관계를 통해 삶의 의욕을 되찾았다. 사실 내가 만났던 ‘은퇴 체질남’들은 하나같이 ‘관계’에 능한 사람들이다.

    50대 남자들이 ‘관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기 위해서는 사회적 차원의 대책도 중요하다. 예를 들면 독일은 ‘다세대 복지주택’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연령대의 주민들이 함께 살면서 자연스럽게 만나고 돕고 서로를 보살핌으로써 ‘관계’와 ‘공동체’를 유지하도록 노력한다. 영국에서 머물 때 동네마다 있는 ‘펍(pub)’이 일종의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는 걸 지켜보면서 부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약속하지 않고도 누군가를 만날 수 있고, 친하지 않은 동네 사람과도 함께 축구경기를 관람하고 응원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많은 사회가 진정한 복지사회라는 것도 실감했다.


    힘들면 ‘도와달라’고 소리쳐라!

    하지만 국가나 사회가 나설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우선 밥 같이 먹는 공동체를 만들라고 말하고 싶다. ‘혼자 밥 먹는 게 제일 힘들다’고 말하는 은퇴남을 너무 많이 만났기 때문이다. 이참에 요리 실력까지 갖추어 친구들 초대해 밥을 먹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다면, ‘소셜 다이닝’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나눠야 한다.

    틈만 나면 식당에 모여 이야기 나누는 여자들을 보라. 여자들이 남편 죽은 후에도 오래 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여자들로부터 배울 건 배워야 하는 시대이다.

    ‘관계 만들기’에도 교육과 놀이, 일의 요소가 모두 포함되면 좋겠다. 그동안 우리는 교육과 일, 여가생활을 나이에 따라 엄격하게 구분 짓는 패러다임 아래 살아왔지만, 앞으로 수십 년을 더 살아야 하는 50대는 위의 세 가지가 통합된 일상을 보내야 한다. 특히 배우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주변을 둘러보라. 요즘 정말 좋은 교육 프로그램이 많이 나와 있다. 인문학도 좋고 실용적인 프로그램도 좋다.

    내가 만난 은퇴자 중에는 평생교육원에서 일어를 배우면서 만난 사람들과 일본 일주여행 계획을 짜곤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알바도 하고 스터디그룹도 만들어 공부하는 경우도 있었고, 목공을 함께 배운 사람들끼리 블로그를 운영하며 돈을 버는 팀도 있었다.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지금, 혼자서도 잘살 수 있어야 하는 건 사실이다. 일상생활의 기술도 갖춰야 한다. 하지만 너무 오래 혼자 지내는 건 좋지 않다. 무엇보다 웃을 일이 많지 않다. 하루 24시간 SNS에 연결되어 있으면 뭐하나. 휴대폰에 수백 명의 이름이 저장되어 있으면 뭐하나. 그보다는 단 몇 명이라도 매일 만날 수 있는 친구가 더 소중한 법이다.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던바(R. Dunbar)도 말했다. 인간의 두뇌 용량을 감안할 때 가장 친한 친구는 5명, 좋은 친구는 15명이 적합하다고. 양이 많아도 허무한 관계보다는 적더라도 ‘찐한’ 관계가 더 의미 있다.

    마지막으로 50대 남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힘들 때 ‘도와달라’고 소리치라는 것이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는 후배들은 말한다. 남자들은 위기에서도 아무 일 없는 척하고, 진실을 말하지 않기 때문에 도와주지 못할 때가 많다고. 자신보다는 타인의 주파수에 맞추어 살아가는 남자들, 제발 잘나가는 척,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척하지 마시라. 너무 징징대는 것도 안 좋지만, 너무 행복한 척하는 것도 좋지 않다. 남들한테 지지 않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는 일이다. 솔직하게 나를 드러 낼 때 개인적으로도 더 성장할 수 있다.

    비록 국가나 사회가 그대들을 챙기지는 못할지라도 그대들 자신이 스스로를 ‘사각지대’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 세상이 점점 더 삭막해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언제 어디서나 당신을 돕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한혜경 호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남자가 은퇴할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저자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8/22/201608220215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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