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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많던 친구들은 어디로 갔을까?
    신문 2016. 8. 22. 16:18

    입력 : 2016.08.22 15:43 | 수정 : 2016.08.22 15:44

    고독사 몰리는 50대 은퇴男의 관계빈곤

    일러스트 이철원

    사례 1

    IT업체 팀장으로 일하던 50대 초반 A씨는 2년 전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의 과중한 업무량을 더 이상 견딜 자신이 없었다. 주말 근무는 기본이고 거의 매일 야근이 이어졌다. 살인적인 스케줄에 30~40대 젊은 부하직원들도 건강에 적신호가 하나둘 켜졌다. 부하직원이라면 며칠 쉬다 올 수 있지만 A씨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팀장으로서 프로젝트 전반을 관리하려면 상시 예의주시해야 한다. 회사의 부속품 같은 삶은 회사를 나와야만 끝날 것 같았다. “이건 사는 게 아니야.” A씨는 아내에게 속마음을 털어놨다. 아내는 “사표를 내고 사람답게 살아보자”며 과감하게 퇴사를 권했고 A씨는 아내의 권유에 힘을 얻어 며칠 후 전격적으로 사표를 냈다.

    하지만 몇 달 후 A씨는 자신의 퇴사를 뼈저리게 후회하기 시작했다. 대책 없이 회사를 그만둬서가 아니다. 도무지 할 것이 없었다. 만날 친구도 없고, 딱히 즐길 취미도 없었다. 막연히 ‘회사 그만두고 실컷 놀아봐야지’ 했지만 놀거리도 없었다. 제대로 놀아본 적이 없었기에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조차 몰랐다. 활달한 성격의 부인과는 달리 A씨는 내성적인 편이다. 프리랜서 기획자인 부인은 늘 스케줄이 넘쳐나지만 A씨는 외롭다. 두 아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퇴사를 하면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었는데 이 또한 뜻대로 되지 않는다. 두 아들은 저마다 스케줄로 바쁘다. 대화를 하고 싶어 다가가면 “정작 아빠가 필요할 때는 없다가 왜 이제 와서 그러세요?”라며 귀찮다는 듯 꽁무니를 뺀다.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그였지만 막상 직장을 그만두고 보니 연락할 친구가 없었다. 친구가 먼저 연락을 해와도 겉도는 말만 하다가 황급히 전화를 끊어버리고 만다. 자신의 초라한 현재 모습을 들킬 것 같은 자존심 때문이다. A씨는 아내한테 수시로 “죽고 싶다” “나는 쓸모없는 존재 같다”는 말을 한다.


    사례 2

    50대 중반 B씨는 중견업체 CEO다. 친구들은 다 B씨를 성공한 인생이라며 부러워하지만 정작 B씨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린다. 늘 고독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속시원히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지만 그럴 사람이 없었다. 끙끙 앓던 그는 심리상담소의 문을 두드렸다. 정신과 전문의에게 그는 난생처음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다.

    “내 마음에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이제는 좀 편안하게 놓아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요. 내가 이 정도로 사회적 성공을 이루었으니 그나마 사람들이 만나주지, 이 자리를 떠나면 주변 사람들 모두가 외면할 겁니다. 아내도 나를 귀찮아하고 부담스러워할 겁니다. 믿을 만한 친구도 없습니다. 다 일 때문에 만나죠. 겉으로는 허허실실 웃으며 부어라 마셔라 즐겁지만, 속으로는 ‘이놈들이 나를 이용해먹을 만하니까 만나주는 것이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생각이 들수록 더 일에 매달립니다.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도 즐기질 못합니다. 머릿속이 일 생각으로 가득 차 있죠. 아이들은 ‘우리 아빠는 돈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내가 돈 버는 기계가 된 것 같습니다. 왜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일을 그만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지금처럼 계속 일중독자처럼 살 수도 없습니다. 차라리 죽어버리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례 3

    서울 강서구의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던 50대 중반 C씨는 2013년에 고독사(孤獨死)했다. C씨의 죽음은 아파트 관리소 직원에 의해 우연히 발견됐다. 하자보수 때문에 초인종을 여러 번 눌렀으나 인기척이 없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잡이를 돌리자 문이 열려 있었다. 빼꼼히 문을 여는 순간 온 집안에는 시체 섞는 냄새가 진동했다. C씨는 홀로 누워 있는 상태였고, 부패 정도로 봤을 때 사후 1주일 이상 방치됐던 것으로 보인다. 문을 잠그지 않은 C씨의 행동으로 볼 때 자신의 고독한 죽음을 어느 정도 예측하고 누군가 들여다봐주길 원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하지만 열려 있는 C씨의 집을 찾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파트 관리소 직원의 방문이 없었다면 C씨의 외로운 죽음은 더 오래도록 방치됐을 것이다.

    A씨와 B씨는 2016년 대한민국 50대 중년남성의 전형적인 자화상이다. A씨는 퇴직했고, B씨는 아직 퇴직 전이지만 심리적 공허감은 같다. 한창 잘나가는 B씨 또한 오지 않은 은퇴를 걱정하며 불안과 초조에 시달리는 건 매한가지다. 한국의 중년남성들은 ‘은퇴’를 ‘심리적 자살’과 동의어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인생 2막’이나 ‘새로운 무대’라기보다 ‘뒷방 늙은이’의 전초전으로 받아들여지기 일쑤다.

    은퇴 남성을 조롱하는 은어도 나날이 진화 중이다. 은퇴 후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는 ‘삼식이’는 옛말이다. ‘영식님’ ‘일식군’ ‘이식이’ ‘삼식놈’이라는 말도 생겼다. 한국보다 ‘은퇴남성증후군’을 한발 먼저 겪은 일본에서는 관련 서적이 수두룩하다. ‘더 늦기 전에 아내가 꼭 알아야 할 은퇴남편 유쾌하게 길들이기’ ‘아직도 상사인 줄 아는 남편, 그런 꼴 못 보는 아내’ 같은 책이 있는가 하면, ‘갈 곳이 없는 남자, 시간이 없는 여자’라는 책에서는 관계빈곤에 시달리는 남자와 시간빈곤에 시달리는 여성을 대비해 다룬다. 남성은 나이가 들수록 관계빈곤에 시달린다. 퇴직 후 가장 먼저 남자가 해야 할 일은 ‘이사 가기’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지역네트워크를 통해 탄탄한 인맥을 다져놓은 아내가 자신과 놀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그 많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50대 중년남성의 관계빈곤 문제는 수치로도 증명된다. 최근 서울시복지재단의 통계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동안 고독사한 사람은 서울에서만 모두 2343명. 하루에 6명꼴로 외로운 죽음을 맞았다. 그중 50대 고독사 비율이 35.8%로 압도적으로 높다. 40대(20.99%), 60대(19.76%)가 그 뒤를 이었다. 70대는 7.41%로, 30대(9.88%)보다 오히려 적었다.(고독사 확실 및 고독사 의심 사례 포함)

    성별 고독사 비율을 보면 더 충격적이다. 서울 지역 남성의 고독사 비율이 여성보다 무려 8.4배나 높았다. 통계를 종합해 보면 40대 후반~60대 초반의 남성이 전체 고독사의 61%를 차지했다. 50대 남성이 고독사 최고 위험군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전국 통계도 비슷하다.

    <표1 참조> 50대의 고독사가 29.0%로 1위였다. 다음으로는 60대가 17.7%, 40대가 17.0%로 뒤를 이었다. 성별로는 남성이 73%로, 여성(17%)보다 7배 이상 높았다.

    고독사는 혼자 쓸쓸하게 죽어간 ‘아무도 모르는 죽음’을 말한다. 여기에는 ‘고독사 확실’과 ‘고독사 의심’ 사례가 포함된다. ‘고독사 확실’은 혼자 살다가 혼자 죽었고 이후 부패가 심하게 진행된 후 발견된 죽음을, ‘고독사 의심’은 혼자 살다가 혼자 죽었고, 부패가 진행되기 전에 발견된 죽음을 일컫는다. 사망 후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발견된 죽음이므로 사망의 원인이 확실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떻게 왜 죽어갔는지조차 모르는 죽음이다. 이 중에는 ‘자살’도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고립도는 여성이 높은데

    왜 50대 중년남성의 고독사가 많을까. 이 통계 결과에 놀라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반적으로 고독사는 ‘나홀로족’에서 많이 발생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추측이라면 1인 가구가 많은 싱글족과 노인층, 그리고 ‘사회적 고립도’가 높은 여성에서 고독사가 많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가족들 사이에 묻혀 바쁠 것 같은 50대 남성의 고독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원인은 두 가지로 분석된다. 하나는 50대가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연구위원은 “65세 이상 독거노인에 대한 다양한 복지정책은 마련돼 있지만 65세 이하는 그렇지 않다”며 이렇게 말했다.

    “고독사는 죽음에 임박한 사람들의 문제라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대부분의 정책이 노인에 맞춰져 있다. 보건복지부의 독거노인지원사업이 대표적이다. 매년 혼자 사시는 65세 이상의 노인을 전수조사해 모든 자치구 차원에서 돌봄서비스를 실시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를 드리거나 한 달에 두 번 방문하는 식이다. 65세 이상의 고독사가 적은 이유는 이런 정책의 효과다. 하지만 65세 이하는 복지정책의 사각지대다. 경제적 위기에 처한 경우 응급사례로 지원서비스를 해주는 경우가 있으나 인정받기도 어렵고, 서비스 신청의 접근성도 떨어진다.”

    송 연구위원은 통계에는 구체적으로 잡히지 않으나 경험적으로 봤을 때 ‘50대 남성이/ 이혼한 후/ 직장을 잃고/ 지병이 있는 경우’ 고독사가 많았다고 말했다.

    또 한 가지는 남성의 관계 맺는 방식으로 설명된다. 여성과 남성은 관계 맺는 방식이 다르다. ‘중년의 배신’(덴스토리)을 쓴 김용태 한국심리치료상담학회 회장은 “남성은 ‘파워 관계’를 중시하지만 여성은 ‘정서적 관계’를 중시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남성은 누가 나보다 센가, 누가 나보다 권력을 더 많이 갖고 있나에 예민하다. 이런 사람들은 조직사회에서는 잘 산다. 대표적인 예가 깡패조직이다. ‘형님’ 한마디로 관계 정리가 된다. 하지만 조직을 벗어나면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파워와 조직으로 맺어진 관계가 끊어지는 순간 대부분의 관계가 원점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여자는 다르다. 정서적 관계가 중요하다. 누가 내 느낌을 알아주나, 누구와 내 느낌을 나눌 수 있나에 집중한다. 이런 관계는 명함이나 직위에 상관없이 유지기간이 길다.”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은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사냥꾼의 속성을 지녔다”고 설명한다. “남자들에게 사냥터는 일터다. 사냥터를 잃으면 존재의 위기를 겪는다. 모든 관계는 사냥터에서 맺는다. 사냥터를 잃어버리면 모든 관계가 새로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속성은 유전자이기 때문에 제거하기 힘들다. 여자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지만 남자들은 고독할 수밖에 없다.”

    “믿고 의지할 사람이 없다” OECD국 중 꼴찌

    그렇다면 모든 남성은 나이 들수록 고독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한국인의 관계빈곤이 유독 심각하다.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표한 ‘OECD 주요국 사회적 관계 수준’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사회적 관계’ 면에서 최하위를 차지했다.<표2 참조>

    “만약 당신이 곤경에 처해 도움받기를 원할 때 의존할 가족이나 친구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긍정적으로 답한 한국인은 OECD 36개 회원국 중 꼴찌였다. 긍정적인 답변을 한 사람의 비율은 72.4%. 15~29세의 긍정적 답변율은 93.26%로 회원국 평균(93.16)보다 다소 높았지만, 50세 이상 답변율은 60.91%로 조사 대상국 평균(87.20%)보다 한참 낮았다. 나이가 들수록 믿고 의지할 사람이 없다고 여긴다는 결론이다.

    이는 세대론으로 설명된다. 현재 대한민국 50대 이상은 ‘서바이벌’ 세대로 묶인다. 7080세대가 먹고살기 힘들었던 ‘서바이벌 세대’의 대표주자이고, 5060세대는 정도는 덜하지만 앞 세대의 영향을 받았다. 이들은 대부분 먹고사는 문제에 급급해 정서적 관계를 맺는 데 서툴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남성들은 특히 더하다. 베이비부머 세대인 50대도 마찬가지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바이벌 스킬’이 체화된 이들은 대부분 성공지향적 삶을 지상과제로 삼았다. 김용태 회장의 말이다.

    “50대 남성은 베이비부머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경제적으로 빈곤한 시대에 살던 사람들이다 보니 죽어라 일만 한 세대다. 지금은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도 이루고 사회적 위치에 올랐는데도 심리적으로 허하다. 살아남기 위해 일을 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심리적 욕구가 충족되지 못한 채 50대까지 왔다. 정서적으로 공허하다 보니 우울증과 자살로 이어지기도 하고, 중독에 빠지기도 한다. 일중독도 중독의 한 형태다.”

    이무석 전남대 의대 명예교수(이무석정신분석연구소장)는 “일을 통해 자존감을 유지하던 사람이 은퇴하면 심리적 균형이 무너져버리면서 위기가 온다”고 분석한다. “평소 가족이나 친구와 관계가 돈독한 사람이라면 ‘일’이라는 기둥 하나가 사라져도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일’이 자존감의 원천인 사람은 일자리를 잃는 순간 존재감의 위기를 겪는다.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피해망상에 시달리면서 주변 사람들 눈치를 보고 별것 아닌 것에도 화를 낸다. 만고에 쓸모없는 뒷방 늙은이가 됐다고 여기면서 스스로 수치스럽게 여긴다. 이런 삶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느냐며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의 50대 중년남성은 불쌍한 세대다. 죽도록 일만 했는데, 은퇴 시점에 와서 보니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다. 정서적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으니 대화를 하려 해도 잘 되지 않는다. 김용태 회장은 출판기념회 자리에서 만난 독자 이야기를 들려줬다. 한 중년남성이 다가와서 “선생님의 책(‘중년의 배신’)을 읽고 처음으로 내 구두를 샀습니다”라고 고백을 했다고 한다. 그동안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옷이나 구두를 사 본 적이 없는 가장이었다. 자신의 취향을 생각해 보지 않은 채 아내가 골라주는 대로 옷이며 구두를 입고 신고 앞만 보며 달려왔다. 하지만 책을 통해 중년이라는 시기에 대해, 자기 자신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고, 자기가 마음에 드는 구두를 사서 신었다는 얘기였다.

    50대 이상 남성의 관계빈곤은 대한민국 현세대의 초상이라는 얘기다. 한국 남자들은 혼자 있는 시간에 약하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미국은 따로 또 같이 보내는 법을 일찌감치 훈련받는다. 혼자 있는 시간을 이겨내고 참아내는 법을 체득한다. 하지만 한국은 집단문화다. 집단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학교, 회사, 집 등 어딜 가나 지켜보는 시선이 널렸다. 특히 50대 이상 가장에게 집은 하숙집 같은 경우가 많고, 아내나 아이들과 대화가 원활한 경우가 거의 없다.

    공병호 소장은 CEO를 대상으로 특강을 종종 한다. 강연 후 단골로 나오는 질문이 있다고 한다. “나는 사회적으로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집에서는 성공한 가장이 아닙니다. 집에만 들어가면 갑갑합니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존중과 이해를 받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2013년 부산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혼자 살던 50대 남성이 숨진 지 6년 만에 유골로 발견됐다.photo channel A 화면 캡처

    중년은 ‘제2의 성인기’

    전문가들은 ‘중년’이라는 시기에 주목한다. 인류가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100세 시대의 중년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5060은 성인기도, 노년기도 아니며 별도의 시기로 분리해 새로운 명칭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시기를 ‘세 번째 무대(the third stage)’ ‘세 번째 인생(the third age)’ ‘세 번째 장(the third chapter)’으로 분류하는 학자도 있다. ‘제2의 성인기’로 명명하기도 한다. 남경아 서울시 인생이모작지원단장은 5060을 ‘제2의 자유학기제’와 같은 시기로 본다.

    “중학교 1학년은 자유학기제다. 청소년이 진로탐색을 위해 시험도 안 치르고 집중적으로 진로를 탐색하듯, 5060은 인생의 학제가 개편되는 시기다. 이 전환기에 탐색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남은 40~50년을 어떻게 보낼지 결정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년은 은퇴 이후의 삶을 ‘경제적인 문제’로만 국한해 생각한다. 이는 지엽적인 문제다. 중년은 자신의 삶을 총체적으로 다시 세팅하는 시기다. 중년은 ‘상실의 시기’이기도 하다. 그동안 가지고 있던 젊음과 에너지, 권력과 지위 등이 하나둘 상실되는 시기. ‘상실이 시작되는 시기’와 남성의 ‘파워지향적 삶의 충돌’이 중년의 위기를 초래한다고 한다. 김용태 회장의 말이다.

    “중년의 남성은 지금까지 익숙한 자신의 남성성과 지금 자신이 느끼는 정서 사이의 갭이 크다. 남성성이 강했던 사람일수록 더하다. 이런 남성들은 별것 아닌 것에도 화를 잘 내고 트집을 잡는다. 일종의 페이킹(faking)으로, 허세와 과시다. 남성의 외로움은 고독이나 성추행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남성은 자기의 고독이나 외로움을 정서적으로 잘 풀지 못한다. 여자들은 외로우면 자신의 마음을 알아줄 사람을 만나 실컷 수다를 떤다. 여자들은 친밀감을 언어로, 남자들은 친밀감을 행동으로 표현한다. 남자들은 외로워도 ‘나 외로워’ 하지 않고 여자를 보면 자꾸 만지고 몸을 댄다. 성추행, 성중독자 중에는 의외로 ‘나는 여자 몸에는 관심이 없다’는 사람들이 많다.”

    결론은 자명하다. 행복한 중년 이후를 보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서적 관계’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김용태 박사는 ‘스몰 토크(small talk)’를 권한다. 말 그대로 ‘작은 대화’, 흔히 말하는 수다다. “일만 하던 사람들은 회사, 국가, 인류가 대화의 소재였다. 이제는 작은 대화가 필요하다. 지금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대방에 대한 느낌은 어떤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며, 그 음식을 누구와 나눠야 행복한지 등이다. 스몰 토크는 정서적으로 중요한 대화다. 그래서 여자들이 건강한 거다.”

    스몰 토크의 대상은 누구라도 좋다. 아내도 좋고, 친구도 상관없다. 따뜻한 밥 한 끼 함께하면서 마음 편히 웃으며 대화할 수 있는 관계를 많이 만드는 것. 이 작은 노력이 중년 이후 관계빈곤에 시달리지 않는 최고의 처방전이자, 나아가 은퇴 이후 수십 년간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열쇠다.

    전문가 tip

    50대 이후 외롭지 않으려면…

    1. 자기 세계를 가져라
    회사 세계, 가족 세계와 별도로 자기만의 세계가 있어야 한다. 내면 세계를 찾아 들어가는 시간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를 수시로 점검하라.

    2. 가족과의 시간에 투자하라
    일에 투자하면 당장 효과가 나오지만 가족에게 투자하는 시간은 당장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아내,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도 일종의 투자다. 가족과의 시간은 남는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다. 따로 시간을 내라. 젊은 날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중년 이후의 정서적 유대감의 뿌리다.

    3. 인생도 기획이 필요하다
    중년이 되면 ‘성취지향적 삶’에서 ‘의미지향적 삶’으로 바뀐다. 의미지향적 삶을 잘 살려면 길을 잘 헤쳐간 선배들의 삶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롤모델이 쓴 글과 인터뷰, 방송 등을 보고 컨설팅을 적극적으로 받아보는 것도 좋다.

    4. 젊게 살아라
    외모를 젊게 가꾸라는 말이 아니다. 세상 돌아가는 공부를 해야 한다. SNS, 이미지, 동영상 등의 활용법도 모르면서 어떻게 젊은 세대와 소통하려 하나. 젊게 살다 보면 새로운 비즈니스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도 있다. ‘내가 과거에는 어땠는데’ 식으로 과거지향적인 삶을 살면 소위 꼰대가 된다.

    5. 거대담론 말고 스몰 토크(small talk)를 하라
    회사, 국가, 인류 등 거대담론만 하던 사람들은 중년 이후에 외롭고 공허하기 쉽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며 가족들로부터 외면당하기 일쑤다. 스몰 토크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스몰 토크는 수다다. 자신의 감정과 사소한 취향을 표현하고 상대방에 대한 느낌을 표현하는 훈련을 하라.

    6. 부부 관계, ‘머슴, 하녀’가 아닌 ‘남자, 여자’로
    일 지향적인 ‘머슴’ 남편과 자신을 잘 도와주는 ‘하녀’ 같은 아내로 내내 살면 중년에 큰 위기가 온다. 만약 그렇다면 대대적으로 관계를 바꿔야 한다. 남자와 여자로서 마음을 이해하고 달래주는 ‘공감적 부부관계’가 되어야 한다.

    7. ‘기능적 삶’에서 ‘존재적 삶’으로

    ‘기능적 삶’은 소유와 명성, 필요성 등 외부 조건에 따라 존재감이 왔다 갔다 하는 삶이고, ‘존재적 삶’은 외부 조건에 관계 없이 자신이 인생의 중심가치를 다잡고 흔들리지 않는 삶이다. 존재적 삶은 과하게 탐하지 않는다.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것은 할 수 있다고 하고 할 수 없는 것은 못한다고 한다. ‘존재적 삶’을 살아야 마음과 마음을 나눌 수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8/22/20160822020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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