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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숙인 자'들의 세상 되어가는 한국신문 2013. 2. 17. 19:33
오마이뉴스입력2013.02.17 17:42
[오마이뉴스 윤정주 기자]
설 명절 오랜만에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장만한 음식을 먹으며 하지 못했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자 화목한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하지만 즐거운 어른들과 달리 친척 동생들은 제 각각 스마트폰을 다루느라 정신이 없었다. 참고 지켜보던아버지는 결국 "요즘 애들은 하나 같이 다 저 짓거리만 하고 있네, 그만들 해라"하고 폭발하셨다.
순간 분위기는 얼어붙었고 작은아버지들은 말에동의한다는 듯 "그러게요 형님, 세상이 미쳤어요, 어른아이 할 거 없이 전부 다 저 폰만 잡고 살아요"라며 받아쳤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친척동생들은 스마트폰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세계 최고의 스마트폰 시장 '한국'
▲스마트폰 ⓒ 김시연
한국은 스마트폰 사용자가 많고 인프라 또한 잘 발달되어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핵심으로 불린다. 이미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절반을 넘긴 애플과 삼성이 가장 치열하게 싸우는 곳이며 스마트폰 서비스 관련 업체들도 너나 할 것 없이 한국을 주요한 테스트 시장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장의 발전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점은 스마트폰이 최근 큰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스마트폰을 필수로 챙긴다고 할 만큼 언제 어디서나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스마트폰을 꺼내든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지어 화장실 갈 때도 스마트폰을 챙겨가는 것이 습관화됐다. 강남에서 직장을 다니는 김용환씨(31)는 "출퇴근 길 지하철을 타면 10명 중 7~8명은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해가 지날수록 책을 손에 든 사람은 줄어들고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 만지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때와 장소 구분 못하고 사용하며 생기는 문제도 심각하다. 수업시간에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게임을 하는 학생들은 부지기수고 직장에서도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운전자의 스마트폰 사용은 대형사고로 직결될 수 있을 만큼 위험하다.
교통안전공단의 실험 자료에 따르면 운전 중 운전자의 시선은 유효한 전방시야를 확인하는 데 90% 이상 쓰이지만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50% 이하로 급감한다. 또한 시야 분산은 제동거리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며 만취한 수준만큼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올 3월부터 개정된 도로교통법이 시행되면 운전 중 스마트폰 사용 시 범칙금이 최고 7만 원 부과되지만 얼마나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스마트폰의 수많은 기능들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다른 이와의 '소통'이다. 위치를 기반으로 한 여러 어플리케이션이 등장하며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을 찾아보고 이야기 나눌 수도 있는 시대가 됐다. 또한 실시간으로 나의 상황을 누군가에게 알리며 감정을 공유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정작 내 눈 앞에 보이는 상대에게는 대화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처럼 고개를 숙인 채 스마트폰만 주시하는 경우가 흔하다. 사람과의 소통을 외치면서 정작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있을 때 각각 스마트폰으로 다른 행동들을 하고 있는 것이 현 상황이다. 지하철 속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에만 빠진 한국 사람들을 보며 외국인들은 다가가기 무섭다고 말한다.
입으로 오가는 대화가 줄어들면서 사회 전체의 분위기는 삭막하게 변하고 있다. 저녁 가족이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던 과거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점심시간 식사가 나오는 그 짧은 시간까지 회사동료들을 눈앞에 두고 서로 스마트폰을 주시하기 바쁘다. 어느새 말을 먼저 건네는 것이 어색한 사회가 된 것이다.
스마트폰 사용으로 인한 대화의 단절... 잠 안자고 "달리기" 하자는 사람들
▲최고의 인기 스마트폰게임 애니팡 ⓒ 윤정주
또한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을 가까이서 장시간 보고 있으면 눈의 근육이 금방 피로하고 안구 노출 면적이 넓어지며 눈 깜빡임은 줄어 안구가 메마르기 쉽다. 이러한 증상이 반복되면 안구건조증, 근시, 난시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자세도 문제다. 잘못된 자세로 목에 통증이 찾아오고 심한 경우 목디스크로 연결될 수도 있으며 손가락에 반복된 힘을 주기 때문에 손가락관절염의 위험도 존재한다. 화장실에서 스마트폰을 즐기는 습관도 좋지 않다. 볼일을 보고도 스마트폰에 집중하다 보면 치질이 발생하기 쉽다.
손기정 일중한의원 원장(한의학박사)은"스마트폰을 사용하다 느끼는 작은 통증을 쉽게 여기고 넘어갈 수 있지만 반복되면 디스크와 같은 큰 질환으로 연결될 수 있다"며 "지나친 사용은 치질 등 여러 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스마트폰으로 인한 게임 중독은 더욱 심각하다. 컴퓨터게임은 시간과 장소의 제약이라도 있었지만 스마트폰 게임은 새벽 어두컴컴한 이불 속에서도, 화장실 안에서도 가능하다. 게임이 별거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한 번 빠져든 사람들은 무섭게 집착하는 모습도 보인다.
몇 달 전, 게임에 빠진 한 친구가 새벽마다 국민의 스마트폰 게임이라 불렸던 '애니팡'에 관한 카카오톡 초대를 보냈다. 애니팡이 잠잠해지기 무섭게 최근에는 함께 달리기 하자며 '윈드러너'라는 게임 메시지가 날아왔다. 시도 때도 없이 보내는 초대메시지만 봐도 게임에 대한 열정을 넘어선 중독 수준이다. 이에 불쾌함을 표시하는 사람도 많지만 게임중독자들은 초대를 보내야 게임을 할 수 있는 시스템 상 헤어진 연인에게까지 메시지를 보내는 판국이다.
스마트폰 중독으로 잃어버린 커다란 것들
겉으로는 스마트폰이 주는 편리함에 가려 커 보이지 않지만 실제 스마트폰 중독은 쉽게 여길 문제가 아니다. 사람 간의 대화가 메마른 삭막한 분위기가 되고 스마트폰 속 세상에만 집중하여 점점 현실을 인지하는 능력이 떨어지면 사회적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 갈수록 집단적인 소통에 대한 문을 닫고 철저한 개인주의적 사회로 흘러가며 상대를 위한 배려심이 사라지고 있는 것도 하나의 예이다.
또한 스마트폰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받고 즐길만한 것들이 많아지면서 정작 중요한 사회적 안건에 대해 관심이 멀어지고 있는 것도 굉장한 문제다. 이는 정치와도 연관이 큰데 다른 부분들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며 정치에 대한 집중도는 과거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국회의원 연금법과 같은 정치적 이슈가 생겨도 한때일 뿐 마치 다른 세상이야기로만 생각하고 쉽게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다.
70~80년대 우리 국민들은 전화기 한 대 제대로 없었지만 매일 같이 권력의 부당함을 파헤치고 그들에 대항하여 투쟁했다. 하지만 지금은 정치, 사회적으로 불합리한 모순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기보다 당장의 스마트폰 속 자신만의 재미에 빠져있는 세상이 됐다. 스마트폰에 더욱 깊숙이 빠져가는 모습을 볼 때 마다 더 커다란 것들을 잃어가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 일까?
어린자녀에게 스마트폰과 책, 둘 중 어떤 것을 줄 것인지 부모들이 신중하게 생각해 볼 때이다'신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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