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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을 위하여 투쟁적이고 호전적이어야 했던 그시절..1 (4편)
    내가 쓰는 이야기 2014. 3. 12. 01:52

    ===삶을 위하여 투쟁적이고 호전적이어야 했던 그시절  1~~

     

     

    많은 차이는 아니더라도 한 지역의 위치적인 특이성과 그당시의 문화적인 습관에 의해서

     

    형성되는 성격이 있다. 그것이 때로는 저마다의 지역색이 되기도 한다..

     

     

    우선 말투에서 ‘됐나?’ ‘됐다’의 짧은 단어 습관이 일상화 되어 있는 어느 지역.

     

    화끈하다고 표현되는 급한 결정과 뒤끝 없슴을 강조하기도 한다.,

     

    말투에서도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반말투가 눈에 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 천년 이상 지배계급 살아온 한 지역의

     

    지역민들에게는 스스로 알게 모르게 익숙히 몸에 익은 습관과 말투가 되었다.

     

    반면에 어느지역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싸움에 따라서 그들의 운명이 달라졌기에,

     

    어느 한쪽으로 편을 못들고, 항상 눈치를 보는 일종의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기에,,

     

    양반이다, 젊잖다..는 표현과 함께 지금도 가타부타의 정확한 입장을 바로 취하지 않고

     

    이런듯도 하고, 저런듯도 여겨지게도 하고 느린 말투와 느린 결정으로 묘한 입장을

     

    취해서 답을 구하는 상대방을 지치게도 한다..

     

    이땅내에 부족국가간 전쟁을 거치면서 방어적이거나 공격적으로 형성된 서민들의 특성이다.

     

     

    그런가하면, 왜구의 공격을 심심찮게 받아야했고, 왜구의 약탈등에 노출되었던 남쪽과

     

    서해쪽 바닷가 마을들은 생존문제가 심각했기에 방어적이어야 했고 거친 바다를 매일

     

    접하기에 조금은 투쟁적이어야 했으며,, 때때로 바다는 남자들을 삼켜버려서 가장의 입장이

     

    된 여인들은 억척스럽게도 변해야 했다.

     

    반면에 산골에서 살면서, 왜구등 침략을 거의 당해 본 적이 없는 산골 생활을 한 사람들은

     

    아무래도 사람이 그립고,, 그래서 친절하기도 하고, 자연에 따라서 살기에 심성이 부드럽다.

     

    결코 투쟁적이지는 않다.

     

    삶이 어디에 정착하느냐에 따라서 형성되는 자생적인 특성이다.

     

     

    이땅은 고려시대 몽고의 침입으로 긴시간을 서민들은 궁핍과 시련,

     

    그리고 죽느냐 사느냐..목숨을 담보로 많은 희생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후로도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등 수많은 외적의 침입으로 피곤하기만 한 삶의

     

    연속이었다.

     

    어느지역의 대표적인 특성처럼, 눈치껏 살아내야만 하는 삶이었는데 다른 나라와의 싸움이기에,,

     

    방어적 보다는 더욱 투쟁적이어야 했고,, 느리게 행동해서는 안되는 긴박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됐나?” “됐다.”의 짧은 언어가 한 지역의 지배계급의 언어 습관이기도 했지만,

     

    윈시시대 남자들의 언어처럼, 긴말을 할 필요 없이, “싸울 준비 됐나?”“오케”

     

    하고 말해야 했던 검은 역사 때문에 빚어진 언어 같기도 하다.

     

    고려시대말 공민왕부터 공양왕 41년간에 왜구 침입만 506회라고 기술하고,

     

    이후 조선시대에도 임진왜란 전 160여년 동안 165회의 왜구의 침입이 있었다 기록한다.

     

    이렇게 많은 왜구의 침입 때문에,,사람들은 투쟁적 호전적으로 변해 갔다..

     

    우리들 조상들은 그나마 살아 남았기에 우리는 여기 살고 있는데,,

     

    죽은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피 속에는 이런 호전적, 투쟁적 피가 짙게 흐르게 된다...

     

     

    고려시대 몽고의 침입은 긴시간 우리들 한민족을 투쟁하고 호전적으로 변하게 했고,

     

    일본과의 임진왜란으로 우리들 한민족을 더욱 호전적으로 만들기도 했고,

     

     

    절대 남에게 지지 않는 저항력을 심어 주기도 했다.

     

    이런 정신들은 일본 하에서 3.1운동도 하게 만들고, 독립운동의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그것이 6.25까지 겪으면서 전국토가 초토화된 가운데서도 이땅을 이런 모습으로 변하게

     

    만든 기적을 일으킨 것은 절대 남에게 지지 않고. 어떤 나쁜 환경에서도 이겨낸다는

     

    저항정신이 우리 몸에 가득했기에 이런 결과를 빚은 것이 아닌가 한다..

     

     

    IMF 경제위기에서의 금모으기, 베트남 전쟁에서의 용맹함을 넘어서는 잔인함,

     

    상상하기 어려웠던 경부고속도로 건설,, 사우디 주베일 항만 공사등의 중동 건설 붐으로

     

    일으켜 세운 발전,,머리카락을 팔아서 만든 가발로 시작해서 일으킨 무역 대국의 역사의

     

    저변에는 생존 때문에 남들보다는 부지런한 민족이 될 수밖에 없었고

     

    죽기 싫으니 빨리빨리 방어를 하자고 부르짖어야만 했던 암흑의 역사에서

     

    외세침입을 이겨내야만 한다는 마음과 정신이 빚어 놓은 결과물이 아닌가 한다.

     

     

    앞서 살펴본대로 초기 원시시대의 남자의 사냥 특성이나 여자들의 동굴 생활의 수다 습관조차 결국은 살아내기 위한 습관이었다.

     

    그런 것들도 지금까지도 유전적으로 전해져 오는데,,

     

    하물며 전쟁 등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이 걸린 문제에서 발생되는 특성은 더욱 인간의 본성에

     

    깊이 자리할 것으로 생각한다.

     

    본래도 사냥기질이 있고 호전적이고, 투쟁적이었던 남자들의 생존 방식이 국가간 전쟁으로 더욱

     

    호전적 투쟁적으로 변했으니,,여성들의 삶이야 어찌했겠는가?

     

    힘으로는 큰 역할은 못하니,, 어서 빨리 좋은 세상이 되기만을 바라면서

     

    조상신, 하늘님, 칠성당에 비는 일 이외에는 다른 대책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자신과 이웃을 보호하기위해서 싸우는 남자들이 책임감 있다고,,

     

    무조건 받들어 모신다는 생각외에 다른 생각을 가질 틈새가 없었을 것이다.

     

     

    모계사회나 부계사회 초기의 다소 낭만적, 목가적인 분위기에서

     

    이후에는 살아내느냐,, 죽느냐의 생존적 , 방어적 인간 습성만이 자연적으로 우리들 몸에 익게 되었다..

     

    그래서 지역색도 더욱 짙게 나타나는 것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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