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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이 6기가 됐는데 책임 없대요, 얼마나 웃깁니까" ①신문 2015. 2. 16. 16:53
"말기 암 치료하려고 했더니 1년 9개월 동안 가짜 약만 먹었어요. 거기다 다른 암까지 생겼는데 의사가 아무 조치도 안 했습니다. 저는 이제 새로운 항암치료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도저히 화가 나서 잠도 못 자겠습니다."
말기 간암 환자인 서재우 씨의 말이다. 2007년 처음 간암 진단을 받았고 4년 뒤에는 복막으로 전이됐다. 그 뒤로도 4년 가까이 흘렀다. 그 사이 서 씨에게는 또다른 암이 하나 더 생겼다. 임파선암이다. 서 씨는 꾸준히 병원에 다녔지만, 치료는커녕 이 새로운 암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누구나 그렇지만 특히 말기 암 환자에겐 하루하루가 더없이 소중한 시간일 텐데 서 씨는 병원에서 허송세월만 했다는 거다.
서 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서 씨는 2011년 11월 간암이 복막으로 전이됐다고 판정 받은 뒤 항암제인 넥사바를 처방받아 복용했다. 하루 4정씩 먹어야 하는데 당시엔 넥사바에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았다. 1정에 2만 2천937원, 약값만 하루에 9만 원이 넘는다. 서 씨는 약 값을 감당할 수 없어 하루 1정씩만 복용했다. 그렇게 석 달을 복용했는데 암의 크기는 15% 정도 줄어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더 이상 약 값을 댈 수 없어 서씨는 다른 방법을 찾았다. 서 씨가 찾아간 곳은 서울의 한 유명 대학병원, 여기서 서 씨는 항암제 신약 임상시험을 권유받게 된다. 이게 2012년 4월이다.
말기 간암 환자를 상대로 한 2차 치료(1차 치료를 수행한 간암 환자가 대상) 수단으로서 '라무시루맙'이라는 신약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임상시험이었다. 서 씨는 아직 검증이 끝난 약은 아니나 효과를 볼 수도 있다는 의사의 권유에 임상시험에 참가하기로 결심했다. (이후의 일이나, 라무시루맙은 2014년 위암과 폐암 치료제로 미국 FDA 승인을 받았다.) 서 씨에겐 남은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서 씨는 각종 검사에서 합격점을 받았고 2012년 11월부터 1년 9개월 동안 임상시험에 참여했다. 2주에 한 번씩 병원을 방문해 주사제를 맞고 몸 상태 체크하고 그런 일상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두달 좀 넘게 지났을 무렵, 서 씨 몸에는 이상한 변화가 생겼다.
목과 서혜부(아랫배와 접한 넓적다리 윗쪽) 양쪽에 없었던 혹이 생긴 것이다. 메추리알만한 크기로 단단한 혹이었고 눈으로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불안해진 서 씨는 자신을 담당한 의사(임상시험이니 연구자이기도 하다)에게 이거 검사해봐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의사는 일단 더 커지거나 통증이 있는지를 보자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 수개월이 흘렀고 서 씨에게 생긴 혹은, 눈에 띄게 커지거나 작아지지도 않은 채로 있었다. 그 사이에도 서 씨는 여러 차례 검사를 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으나 의사는 만약 조직검사까지 하게 되면 이 시험은 중단할 수 없다면서 그래도 괜찮겠냐고 반문했다고 했다. 서 씨는 의사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1년 9개월이 흘렀고 2014년 7월 임상시험은 종료됐다.
서 씨의 상태는 호전되지도 더 악화되지도 않았다. 말기 간암 환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다행일 수도 있다. 의사는 서 씨에게 "당신이 1년 9개월 동안 주사맞았던 약은, 시험 대상이었던 라무시루맙이 아니라 위약, 가짜 약이었다"고 말했다. 서 씨는 깜짝 놀랐지만 병원에서는 서 씨가 처음에 서명했던 피험자 동의서를 다시 보여줬다.
3. 이 시험의 참여를 결정한 경우, 어떠한 과정이 진행되나요?
귀하가 시험 참여에 대한 모든 기준을 충족시키고 본 시험의 참여에 동의한 경우, 귀하는 2개의 치료군 중 1개에 배정될 것입니다.
귀하 또는 귀하의 담당 시험의사는 귀하가 어떠한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필요한 경우 담당 시험의사는 그러한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귀하가 라무시루맙 또는 위약(시험약과 유사하게 생겼으나 활성 약제가 들어있지 않음) 가운데 어떠한 약물을 투여받게 될 것인지는 우연에 의해 결정됩니다. 2개의 치료 중 1개의 치료를 받게 될 확률은 동전을 던져올려 결정하는 방법과 같이 1/2입니다.
또 서 씨가 2주마다 투약받을 때마다 받았던 안내문에도 '치료약제 : 라무시루맙 또는 위약' 이라고 나와 있었다. 서 씨는 그걸 보긴 했지만 설마 내가 가짜 약을 맞고 있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서 씨는 억울했지만 항의하지 못했다.
서씨 가 항의하고 나선 계기가 된 건, 얼마 뒤 또다른 신약 임상시험 참여 권유였다. 서 씨는 임상시험 참여 대상에 적합한지 검사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서 씨는 자신의 몸에 생겼던 혹이 임파선암이라는 걸 알게 됐다. 2기로 판정받았다. 서 씨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얼마나 웃깁니까, 임상시험 하면서 내 자비로 조직검사 받겠다고 해도 안해줬는데 새 임상시험 참여하겠다고 했더니 임파선암 2기가 나온 거죠. 저는 복막으로 전이된 간암 4기에다 임파선암 2기면 6기입니다. 암이 6기예요. 대한민국에 저 같은 암 환자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세요."
서 씨는 병원에 따졌지만, 병원 측은 아무런 과실이 없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서 씨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 신청을 냈지만 병원에서 거부해 조정 절차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취재파일] "예강이를 잊지마세요"…'예강이법'도 결실 맺을까) 다시 소비자원에 의료사고 피해구제 신청을 하고 병원을 상대로 한 소송을 준비 중이다.
병원 측 입장은 이러했다.
Q. 임상시험 과정에서 문제 없었습니까?
A. 임상실험 진행과정에서 아무 절차적, 윤리적 문제가 없었습니다. 모든 과정을 환자 동의 하에 진행한 것이기 때문에 병원의 과실은 없다고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의료분쟁 조정신청이 들어온 뒤에 의료진 의견을 물었더니 과실이 전혀 없다고 해서 참여 자체를 거부한 겁니다.
Q. 임상시험에서 가짜 약을 복용했는데?
A. 임상시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좀 부족해서 하는 말씀 같아요.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지금 시판되는 약을 드시는 분도 계시고요. 이것보다 효능이 좀 더 좋거나 다른 약 두 가지를 비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어떤 분이 어떤 약을 드시게 될지는 당연히 비밀로 하는 거고요. 그래야 다른 부수적인 요인에 의해서 약효가 달라지는 건 아닌지 혼란을 줄 수 있는 것을 원초적으로 제거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가짜약을 드시는 게 아니라 기존의 환자 분 질병을 치료하는 기존 약을 드시는 거고요. 기본적으로 임상실험에 대해서는 잘못 알고 계신 거고 가짜약이 아닙니다. 기존 약을 드시고 계셨던 거예요. 거의 모든 임상실험은 그렇게 진행이 됩니다.
Q. 임상시험 중에 혹이 생겼는데 검사를 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문제 없나요?
A. 그게 혹이었잖습니까. 계속 커졌다든지 문제가 있으면 검사를 당연히 했을텐데 이게 계속 변화가 있었던 거죠. 그래서 좀 더 지켜봐야되겠다 라고 의사가 소견을 말씀 드렸고, 환자가 그러면 그렇게 하자고 동의해서 진행이 된 겁니다. 임상실험은 기본적으로 모든 게 환자 동의 없이 의사 임의로 하면 안되는 겁니다. 지속적으로 문제가 있다거나 하면 의사가 먼저 말했을 수도 있는데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고 판단을 한 거죠, 그때는.
그래서 그런 설명을 했고 환자분이 동의하시니까 그냥 진행을 했던 거예요. 왜냐면 그 분은 말기 간암 환자셨기 때문에, 여유가 있는 환자가 아니라는 얘기죠. 이 약에 기대를 갖고 있는 단계였기 때문에 그래서 의사도 설명을 했고 환자도 그래서 아마 동의를 하셨을 것 같아요.
Q. 신약의 임상시험은 성공한 건가요?
A. 약 자체는 실패한 거죠. 임상시험을 보통 여러 군데서 하는데요, 종합적으로 판단해보니 이 약은 실패한 거다라고 판단을 한 거죠.
정리하면, 임상시험은 원래 시험하려는 약과 위약 투여군을 나눠서 진행하는 것이고 이런 부분은 이미 통지가 됐다, 환자가 잘 몰라서 하는 얘기다, 임상시험 중에 다른 암이 생긴 부분은 당시 의사는 '더 지켜봐야겠다고 판단했고 환자가 동의했기에 그렇게 진행된 거다, 결론은 병원은 아무런 과실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결론은, 서 씨가 임상시험에 대해 잘 모르거나 제대로 알려하지 않은 채 참여해 뒤늦게 문제 제기하는 것이고, 서 씨에게 또다른 암이 생긴 건 불행한 일이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고, 병원은 서 씨에게 아무런 보상, 혹은 사과 같은 걸 해줄 필요가 없다가 된다.
정말 그러한가. 이제까지의 내용을 읽은 독자들은 어떤 판단을 했을지 궁금하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게 내 판단이었다. 다음 편에 이어서 쓰겠다.'신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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