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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의 레이너와 모스는 열여덟에 처음 만나 서른두 해를 함께한 중년 부부이다.
스무해 이상 가꾸워 왔던 농장과 집을 3년여의 법정공방 끝에 모두 빼앗기게 된다.
믿었던 모스의 친구의 배신에 의한 상처이기에 상실감은 더욱 크다. 더욱이 남편 모스는 치료제도 없이
진통제로만 버텨야 한다는 희귀병인 피질기저퇴행이라는 고통의 병을 안고 있다.
시한부 인생의 남편과 함께 집도 절도 없는 처지가 된 레이너는 배낭 하나 걸머지고 영국 남서부 해안의
내셔널 트레일 코스인 <사우스 웨스트 코스트 패스>로 무작정 향한다.
우연히 보게된 다른 이의 <사우스 웨스트 코스트 패스> 횡단기를 보고서 이것이 지금 이순간
가장 할만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된 일이다.
8키로 남짓의 배낭 무게도 힘들다 하고, 건강도 좋지 않은 상태이며 주급으로 나오는 돈이 46파운드인
상태에서 1,000키로의 길을 무작정 걷는다는 것은 무리수가 분명하다.
그럼에도 길을 떠나기 전 부부 대화가 의미심장하다.
“우리가 했던 일 중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이 될지도 몰라.”
“하지만 언제 우리가 한 번이라도 쉬운 선택을 한 적이 있었어?”
영국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길을 걸으며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스스로를 구원해가는 안타까운 이야기가
힘찬 열정의 소리로 탈바꿈하면서 들리는 놀라운 이야기이다.
밤이 되면 텐트 칠 곳을 찾아 헤메고, 낯선 이들의 만남에서 축하를 받고 응원을 받기도 하지만 조롱과
의심의 눈초리도 만나게 되는 하루하루의 연속이다.
그것을 언제나 하루같이 희망의 언어로 많은 것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 정말 놀랍다.
페이지마다 영국 해안의 아름다운 풍경과 밤하늘을 묘사하는데 직접 보지 못했음에 감흥은 다소 부족하지만,
그녀가 만났던 사람들과의 대화와 생생한 기억들에 대한 글들이 예상의 기록물은 아님을 느끼게 된다.
거의 무전여행이라고 할만한 현실 앞에선 부부의 대화는 그래도 항상 긍정의 의미를 엿보게 하는 점이 놀랍다
우연히 점을 보게 되는데 레이너는 글을 쓰게 될 것이고, 모스는 거북이와 산책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맞아
떨어짐이 또한 신기하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나름대로 인생을 어떻게 끝마칠지에 대한 계획이 있었다. 아흔다섯이 되면 어느 산꼭대기에 올라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그저 잠을 자듯 세상을 떠나는 것이 우리 계획이었다.
이런 긍정의 언어를 사용하며 내일과 희망을 위해 걷는다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
마인헤드부터 시작하는 1,000킬로미터가 넘는 긴 여정에 옷은 헤지고 외형으로는 많이 피곤해 보였지만
여전히 살아 있음을 경험하며 여정을 시작할 때만 해도 힘없이 늘어져 있던 연약하고 창백했던 몸은 시간이
지나면서 군살 하나 없이 햇볕에 탄 몸으로 변했고, 영원히 되찾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탄탄한 근육도
생겼음을 말한다.
더욱이 모스와 레이너의 사랑의 깊이는 더욱 충실해졌고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서도 스스로를 구원해 생의
의미와 자아를 찾는 과정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교훈처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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