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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에게 사랑이란 의미는
    내가 쓰는 이야기 2005. 5. 29. 16:14

     

    나에게 사랑이란 의미는.......

     

     

    본디 외향적 격식을 별로 싫어하던 나는,,

    대학 1학년 때도,2학년 때도 빡빡머리로도 다니던 공대의 괴짜(?)이기도 했다.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도 당당한 사내(?)였고,

    형에게 대물림 옷을 입어도 누구 앞에서도 당당한 그런 존재였었다.

    또한 마트에서나, 시장에서 무엇을 좀 사다가 달라 하면,

    검은 비닐봉지, 흰 봉지 거리낄 것이 없었다.

     

    물론 이런 나를 아내는 좀 가꾸어주려 애썼지만,

    아내가 곱디고운 옷을 사다주면,,

    이런 화려함이 나와 어울리느냐... 하면서 투정

    순모에 실크가 섞인 윤기 잘잘 흐르는 옷이라도 사러가자 하면,,,

    오히려 내가 옷을 모시고 살아야겠다고...투정.

    신발도 랜드로바 위주의 편안함만을 찾았고, 넥타이를 벗어나길 원했다.

     

    예전 한 여인을 아내라는 이름으로 함께 할 때는,,

    그냥 누군가가 있는 것 만의로의 자신감과 만족도 많았었다.

    행복이란 단어로 대신할 만한 그런 시간과 공간의 의미들이...

     

    그런데,,

    최소한 옷이란 개념 하나로도 난 많이도 달라져 있다.

    홀아비라서 꾀죄죄하게 옷을 입고 다니나? 하는 시선을 받기는 싫어서,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고,

    다림질에, 정갈하고 비싸고 화려한 색감으로.....

    남의 시선을 느끼고 사는 존재로 변했다.

    물론 나이 40이 넘었으니, 얼굴에 책임도 지라는데,,

    옷도 조금 조심스레 입어야 함도 사실이지만, 내 옷의 선택이 달라졌음은 사실이다.

    혼자서 시장에서의 물건 고름은 그래도 편안하나,

    마트라던가 큰 쇼핑센터의 물건구입에는 뭔가가 어색하다.

     

    누군가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행복이란 단어를 느끼고,

    난 그 행복이란 단어를 잃어버리고 예전의 행복의 의미를 느낀다.

    ================================================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可名

    우리가 도라고 말하는 것은, 진정한 도가 아니고,

    우리가 이름지어 말하는 것은, 진정한 이름이 아니다.

     

    대학1학년 시절 내 마음을 한껏 뒤흔들던 노자 도덕경의 첫머리 글이다.

    난 이 글귀 하나가 노자의 모든 사상을 대변한다고 동기, 후배에게 강론하던...

    우리가 도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저 것이 도다.> 하고 객관화하여 버리면,

    그 도라는 단어는 이미 추상적인 단어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추상적인 단어에 이름을 붙여버리면,

    그 추상적인 단어는 객관화되어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임병수> 라는 가수이던가?

    사랑이란 말은 너무도 흔해/너에게만은 하고 싶지 않지만은//

    ~~~~~그래도 사랑해~ 사랑해~사랑해~...

    이런 가사의 노래를 불렀다.

    사랑이란 추상적인 단어가 너무나 객관화되어서(너무 퇴색되어서)

    너를 향해서만은 더 좋은 단어를 생각하고 싶은데,

    다른 표현을 찾을 길 없어서,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하고 읊었던 것이다.

     

    다른 곳에서도 그런 예를 찾을 수 있는데,

    막스밀러의 (독일인의 사랑)에서, 전체를 대변하는 글귀 중 하나 보면,

    <나는 너의 아빠라도 좋다, 너의 오빠라도... 나는 너의 무엇인가가 되고 싶다>의

    <무엇인가>라는 단어가 진정한 사랑을 대신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말도 못하고, 똑 바로 쳐다보기도 어렵고,

    사랑의 열병을 표현도 못하는 상황.

    그런 상황이 노자가 말하는 진정한 道와 名인 것이다.

     

    누군가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고 나면,

    이내 손도 잡고, 손을 잡으면 키스도 하고, ~~~~~~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로 용감(?)한 진행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추상화가 객관화가 되니 가치(?)가 퇴색되는 것이다.

    이 것이 전자의 道와 名이다.

     

    그런 의미로 김춘수님도

    <너에게로 다가가 어떤 의미가 되고 싶다.>의 표현을 했나 보다.

    막스밀러의 (무엇인가)와 김춘수님의 (어떤 의미)는 그냥 추상적이다.

    그러기에 어떤 진정한 의미와 뜻의 깊이가 있다.

    사랑해라는 단어보다는 추상적이지만, 깊이가 있다.

     

    ++++++++++++++++++++++++++++++

     

    난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강요(?)받았었다.

    여자들은 흔히들,,

    나 사랑해?//사랑한다고 말해봐// 사랑한다고 말해줘//

    이런 단어들을 참 좋아 하는 것 같다.

    어떤 특정지역이 고향이 아니어도,

    나를 포함한 남자들에겐 어떤 때는 참으로 이상스레 안나오는 단어의 나열이다.

    어쩌면 공수표 남발하는 이들은, 그런 표현을 입에 달고 살지는 몰라도....

     

     

     

     

    언급하였듯이,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설혹 난 헤어진 옷을 입고도 위축되지 않았었고(별로 입었던 기억도 없지만),

    아무튼 난 당당하였다.

    사랑해 소리 안하고도, 잘도 살았고, 사랑해 소리 하면서도 잘도 헤어졌다.

    그렇게,

    사랑이란 것도 변하더라.

    이렇게 혼자가 되었다는 것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해도, 그래도 나는 영원한 사랑일 줄 알았는데....

     

    이런 나에게 있어 이제 사랑이란 의미는,

    그냥 누군가의 <무엇인가>가 되고 싶은 것, <어떤 의미>가 되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가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다는 것으로 만족하는.....

     

    욕심이 많은 것이다.

    오늘 어떤 자폐아의 손을 이끄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저 어머니에겐 저 아이가 보통의 아이들과 같아지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일테고,

    어느 날 신체의 불구가 있는 이에겐,

    그냥 신체 건강했던 날들이 얼마나 행복이었던가? 회상하듯이,

    이혼을 하고, 사별을 하고, 40이 넘어서 아직도 혼자인 것도 평범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

    그냥 평범한 것이 얼마나 행복이었던가?

    행복이란 단어를 잃어버리고야,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알았다.

     

    이 나이에 어떤 외모와 어떤 특정직업이 아직도 중요하던가?

    그 직업과 외모가 평생을 간다던가?

    진정한 사랑과 아낌를 바란다고만 하는가?

    남을 위하고 아낀다는 배려는 없이, 우선은 무조건 받아야만 하는가?

    그냥 상대를 서로 이해하는 누군가만 있어도, 행복이란 단어를 찾을 수는 없을까?

    진정한 의미의 행복과 사랑을 찾고자 하는가?

    10여년을 사랑한다 하고도 깨지는 것이 인생살이더라.

    살면서 너무나 많은 욕심을 계속하여 버리지 않지는 않았던가?

    열등의식에 의한,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을 채우는 보상심리만 팽배했는가?

    욕심, 욕심이, 욕심이 많은 것인가?

     

    나에게 있어 사랑과 행복의 의미는,,

    대화가 통하고, 비슷한 생각과 뜻을 같이 하고,

    같은 인생길을 보면서,

    이왕이면 같은 취미 활동으로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다.

    친구라는 개념과도 상통하지만,,

    친구들조차 누가 친구이고, 누가 그냥 아는 얼굴인지?

    내가 어려워지고서야 알겠더라.

     

    힘없는 강아지에게도 자기 집 울타리 안에선, 한 수 접어주어야 하지 않던가?

    이 나이에 부모님을 狐假虎威 삼을 수도 없을 테고, 아내라도 있다는 것이 호가호위겠지.

     

    내가 어려워도 기뻐도, 상대에게 어려움도 기쁨도 말해줄 수 있고,

    상대는 나의 이야기와 동조를 해주는,,

    그런 사람이 같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고,

    또한 어떤 의미인지를 이제는 알 것 같다.

    그 의미가 쇼팬하우어의 고슴도치 사랑과 같아야 한다는 말이다.

    고슴도치는 서로가 너무 가까이 있으면, 서로의 가시에 찔려 상처를 입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서로의 온기를 느끼지 못한다는.....

     

    너무나 사랑해, 사랑해~~~~의 의미보다는,

    아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떤 의미가 되는 그 무엇을 바란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도, 서로가 많은 것들에 대한 욕심도 너무 갖지 말며,

    서로에게 예의를 갖추고, 정신적으로 위안을 삼을 상대,

    내가 소중한 이라고 생각할 만큼, 스스로 소중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이.

    나이 많이 먹어가면서 이것만은 또한 버리지 못하는 나의 욕심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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