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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매들의 길
    내가 쓰는 이야기 2019. 5. 27. 22:58



    내가 지금 사는 곳은 산을 절개하여 마을을 형성한 곳으로, 내가 사는 집과 야산까지는 약 20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지요.

    봄철임에도 여름처럼 뜨거웠던 어느날, 산쪽에서 할머니 한분이 등에  보퉁이 하나 짊어지고 다가 오십니다.

    나를 보자 떠듬떠듬 하시는 말씀이 ' 물 한모금 얻어 마실 수 있나요' 하는 말씀이었지요.

    2리터 생수통에 반쯤 남은 물과 종이컵을 건네 드렸는데, 얼마나 지치셨는지 컵을 받은 손이 부들부들 떨립니다.

    단숨에 몇잔의 물을 들이키시고야 조금은 한숨을 돌리는 할매가 많이도 안쓰러웠습니다.

    "할머니 이렇게 뜨거운 날에 산길을 힘들게 다니시면 어떻게 해요? 좀 쉬엄쉬엄 하시지요."''고시라 꺽으러 가신거예요?"

    그냥 끄덕끄덕 고개짓으로 건성으로 대답을 하시는데,, 이웃마을 명천에 사신다면서 한숨 돌리시더니 큰길로 안가시고

    다시 또 산길로 접어 드십니다.

    등까지 굽은 할머니의 모습에서 어떤 연민과 우리네 어머니들의 위대한 힘을 동시에 느끼던 순간이었습니다.


    3월 중순 무주로 이사를 하고 3월 말 경에 집뒤 야산에 한번 올라갔다가 길을 잃어버리고, 산길을 몇시간을 헤매고 헤매다가 간신히 

    자동차길을 만나고 거기서부터 한시간 정도를 큰길을 따라서 어렵게 집을 찾아 온 적이 있었지요. 

    산속이라 방향 감각은 없지, 같이 지내는 이웃에게 '나 좀 데리러 오라'고 전화하려해도 어딘지도 모르겠고 이러다가 멧돼지라도

    만나면 어쩌나하는 약간의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산길을 다시 올라가지 않고 지냈더랍니다.

    그런 숲길이 있는 무주 산골엔 5월의 중순인데도 아직도 산속에 고사리가 있었나 봅니다.


    조금은 무료했던 어느날에 그숲속의 길에 올라가 봅니다.

    할매들이 숲속에 어떤 길을 따라 고사리를 꺾던 봄날의 시간이 조금은 지나간 시간이었습니다.

    호기심도 있었고 비가 온 다음날이라서 고사리가 혹시 피었으려나? 하는 기대가 조금은 있어서 이기도 했지요.

    그렇게 숲길을 걷는데, 고사리가 아직도 많이 눈에 보이고 취나물이 한창입니다.

    5월 초에 서울에 갔을 적에 밤꽃이 피기도 했는데 여기는 5월 중순이후에야 아카시아가 한창이니 내가 사는 곳이 

    해발 450미터 정도 되어서 추운 탓에 아직도 고사리와 취나물이 피어나나 봅니다.

    그렇게 산속에서 취나물 고사리를 꺾으면서 며칠을 숲속에 운동삼아 오르내리는데, 우산나물이 눈에 뜨입니다.

    인터넷 검색을 하고 생전 처음으로 우산나물을 뜯어와서 쌈싸먹고 나물로 무쳐도 봅니다.

    그렇게 할매들이 다녔을 듯한 그 길엔 요즈음엔 사람의 흔적은 없습니다.


    숲에 낙엽들이 쌓여 부엽토가 되어 푹신해진 길에 사람의 발자국이 찍혀있고 그길을 따라서 할매들은 움직였나 봅니다.

    간혹 그 길을 벗어나서 취나물 등을 뜯다가보면 길을 벗어나서 나무들 우거진 숲속에 갇히기도 하지요.

    깊은 숲속 외진 곳엔 봄에 할매들이 고사리를 꺽으러 다니면서 만들어 낸 길이 있습니다.

    나는 그길을 할매들이 만든 길, 할매의 길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고사리도 억세질 시간이 되고, 농사일이 바쁜 시간이 되고 , 찔레가시 덤불에, 청미래 덩쿨의 가시가 온몸을 찌르고 

    이젠 숲에 뱀도 나타날 시간이 되니 숲속엔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할매들이 만들어 낸 길을 벗어 났다가 찔레 가시와 칡덩쿨 등에 갇혀 고생을 몇번을 경험하고서야 욕심을 조금 내려 놓고,

    할매들의 길을 따라서 다니는 것이 정답임을 알게 됩니다.


    이 숲길도 조금 더 숲이 우거지면 걷기 힘들어질텐데, 나는 무슨 재미로 봄나물이 없는 6월 7월을 보낼까? 걱정을 해 봅니다.

    15평 정도의 작은 텃밭에서 나오는 풋성귀보다는 숲길에서 만나는 봄나물이 훨씬 내 취향인데 말이지요.

    아카시아 꽃이 한창일 때 효소를 담글까? 하다가 몇년 전에 담아 놓은 효소도 아직도 많은데.. 하면서 아카시아꽃차나 

    만들어 보자.. 하고 만들어 보았더니 생각 보다는 별로 였습니다.

    아카시아 꽃으로 효소 만들어서 인터넷에 올려 팔 것을 그랬나? 하는 후회도 해보지요.

    아카시아 꽃 효소보다는 칡꽃효소가 더 좋으니 그때는 놓치지 말자 생각해 봅니다.


    아직은 고사리가 쑥쑥 올라오는 할매들의 길에,, 오늘 비가 종일왔으니 내일은 고사리가 한창일 듯 합니다.

    나이들어가니 내 안에 숨어있는 여성성이 발동 하나 봅니다.ㅎ

    내일 또 숲속 길을 가 봐야지.. 하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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